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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08. 2019

요리하는 남자, 설거지하는 여자

어떻게 우리는 역할 분담하게 되었나?


결혼 1개월 차, 나와 남편의 카톡이 동시에 울린다. "집들이는 언제부터야?" 우리는 일단 우선순위를 정했다. 우리 부부의 13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고 있는 친구를 먼저 초대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장을 보러 집 앞 마트로 향했다.


분명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좀처럼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손에 있던 메모장을 보던 남편은 메뉴를 보며 조곤 조곤 말했다. "이건 재료가 너무 비싸고, 또 이건 요리하는 게 힘들고, 어쨌든 우리 결혼을 도와준 장본인이니까 좀 더 좋은 걸로 잘 해주자." 바쁘던 남편 대신 나 혼자 메뉴를 정했지만, 내 메뉴는 하나 빼고 다 탈락이다. 남편은 카트를 밀며 채소 코너와 해산물 코너를 누빈다.


마트를 가면 '내 집인 양' 누리는 남편의 모습에 매일 또다시 반하는 편이다


우린 맛집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그냥 먹지 않는다. 첫 숟가락을 뜨고 남편은 가만히 코로 냄새를 맡고 입 안에 들어오신 음식님을 영접한다. 첫 만남의 찰나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잠깐 동안 어떤 소스를 넣었는지, 어떤 맛이 강한지 하나씩 분해한다. 첫 숟가락의 신비를 경험한 난 '어때? 어떤 맛이야?'라며 그의 혀를 각성시켰다.


맛집 지도에 올라간 수십 가지의 요리 중 그래도 '절반'은 먹어본 것 같다!


난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하는 편이다. "진짜 맛있다"라는 말이 10번 이상 나오면 내 맛집 지도에 입력된다. 그와 함께 남편의 머릿속에도 자동 저장된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각성된 혀를 다시 떠올리고 내게 아낌없이 재료를 써서 맛집을 자동 재생시켜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건 역시 십 수년의 '훈련' 덕분이다.


그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티비를 켠다. 그리고 올리브 TV 채널을 켠다. 똑같은 식재료로 다른 요리를 만들어내는 맛의 향연을 보면 짜릿해 밤을 지새운다. 핸드폰을 켜고 음식과 재료를 적어둔다. 티비에서 나왔던 똑같은 재료가 아닌 '가성비' 좋은 재료로 바꿔주는 게 중요하단다. 연애할 때 분기별로 그의 '실험적'인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말해 뭐하는가, 매일 맛있었다.


십 년 지기 베프를 위한 요리에 이어, 나의 외가 친척을 집들이에 초대했다. 토요일에도 하루 종일 일하고 온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었다. 큰 건 바라지도 않으니 재료만 준비해두라고 했었던 그의 말대로 준비를 해 보려고 나름 노력했다. 주방에만 가면 바보가 되는 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지둥 댔고, 재료 손질부터 다시 남편의 손에 맡겨졌다.


<인증합니다> 집들이에서 스튜 먹고 한 달 내내 스튜만 사 먹었다는 언니의 썰만큼, 여긴 스튜 맛집입니다


집에선 생전 접하지 못했던 재료들이 깊디깊은 냄비에 투하됐다. 그는 프라이팬과 냄비를 동시에 두고 국자를 휘휘 저으며 주방을 전두 지휘했다. 그들이 오기 한 시간 반 정도에 시작한 요리들은 생각보다 성공적으로 식탁에 플레이팅 됐다. 신나게 인증샷을 찍던 그들은 누가랄 것 없이 아주 조용히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그 많던 음식은 누가 다 먹었을까? 배를 두드리며 그들은 "남편 잘 만났네, 잘했다~ 결혼"이라는 말로 엄지를 추켜세웠다. 10년 전 그들의 말은 잊은 듯했다. 처음 20대를 맞이해 함께 유럽 여행 갔을 때, 우리 커플의 모습을 본 그들은 “결혼 절대 불가능”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우리의 성장 스토리를 확인한 그들에게 진짜 결혼에 대한 로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익숙한 사람이 먼저 움직인다. 주방에 익숙한 남편은 그 공간을 지배한다. 성공적인 집들이 이후, 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간 맞추는 것까지 베이스까지 하나하나 물어보게 됐다. 덜렁거리다가 그릇이 미끄러지거나 손이 칼에 벨까 봐 더 시키지 못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를 도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설거지다.


요리보다 설거지, 불순물이 씻겨나갈 때의 그 쾌감이란,


요리는 메뉴가 정해지고 나면 재료를 사고 또 손질을 해야 한다. 간을 맞추기 위해 적절한 양념을 하고 나면 딱 절반이다. 메인 요리와 어울리는 반찬을 냉장고에 꺼내 세팅과 동시에 수저를 올려놓는 것까지가 요리의 끝이다. 메인 요리는 남편에게 맡기고 뒷부분은 온전히 내 몫이다.


설거지는 이보다 조금 단순하다. 부피가 큰 순서부터 작은 것을 차례대로 올려놓고 물을 뿌려준다. 묻어있는 양념을 물로 제거하고 수세미에 묻은 세제로 그릇을 뽀득뽀득 닦는다. 물로 불순물을 제거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역할분담했다. 결혼 전부터 요리에 부담을 가졌던 난 남편 덕분에 단계별로 요리를 배워나간다. 설거지를 싫어하는 남편은 싱크대에 그릇을 잘 쌓아놓는다. 참 다행인 건 우리에게 주방이 누구 하나의 몫이 아니다. 이렇게 요리하는 남자와 설거지하는 여자는 함께 주방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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