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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12. 2019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결혼은 처음의 반복이다

결혼 후 처음 남편과 외갓집에 갔다. 우리 집 식구가 한 차에 타고 오는 동안엔 느끼지 못했지만, 외할머니댁에 들어가기 직전, 좌회전 신호를 대기할 때부터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편 등이 눈 앞에 보였다. 새로운 등장인물 그리고 처음 맞닥뜨릴 수 십 개의 낯선 눈빛을 그가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목이 바짝 말랐다.


매년 5월 첫째 주는 외할머니댁으로 향한다. 스무 명이 넘는 외갓집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엄마의 오 남매가 함께 어버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다. 함께 고기 파티를 하며 할머니에게 우리의 행복한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다. 모든 식구들은 이 약속을 첫 번째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잡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적을 때, 이제 한 단계가 더 추가됐다.


결혼 후에도 다이어리에 일정관리는 내 몫이었다. 약속을 잡는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항상 남편도 함께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건 나의 외삼촌 덕분이다. 그는 "신랑이 오고 싶지 않아 하면 강요하지 마. 항상 먼저 물어봐야 해." 그래. 그렇게 상대방에게 먼저 물어봐야 한다. 남편은 쉬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당연시 여겨왔던 것들이 당연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 이제야 결혼이 실감 났다. 시시콜콜한 부분도 나 혼자 결정할 수 없었고 모든 이야기들을 공유해야 하며 1부터 10까지 감정을 수치화해보는 노력이 필요했다. 최근 남편과 다툴 때 상처 받았던 말이 있다. "연애 때보다 오히려 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에게도 사생활을 얘기하고. 배려 없이 말하는 것 같아."


소통방식에 거부감을 느낀 남편은 직설적으로 내게 말했다. 난 거리낌 없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작은 사생활과 우리 둘의 대화를 말했다. 남편은 그 자체가 불편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으며 귀부터 빨갛게 달아올랐을 그의 모습이 떠올라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꿈속에서 쫓기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며 며칠 잠을 설쳤다.


혹시 배려하지 않는 와이프가 되진 않을까? 결혼 후 5월 첫 번째 주말이 오는 게 두려웠다. 함께 보낼 수 있는 주말에 대가족이 모이는 자리에 가는 게 괜찮을까. 남편은 흔쾌히 즐거운 자리이니 함께 가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나의 부케


하늘 정중앙에 떠 있었던 해는 정수리를 뜨겁게 했다. 어른들 사이에 척추를 꼿꼿이 세운 그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넓은 등으로 고스란히 햇살을 맞고 있었다. 가만히 등을 보던 엄마가 그에게 말했다. "더우면 저 쪽으로 옮겨 앉아. 참지 말고."


"새로운 상황들이 부딪히는 게 참 당혹스러워.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연신 소주를 들이켜시던 이모부가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최근 사촌 오빠의 여자 친구가 집에 왔다. 결혼을 생각하는 아들 앞에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낯선 마음이 어려웠던 것이다. 우리는 결혼식 전 몇 개월을 결혼식 당일과 입주를 위해 달렸다. 코 앞에 닥쳐있는 수많은 일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감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앞서 경험했기에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예전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두려움을 토로하셨을 것이다.


결혼은 처음이다. 물론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딸의 결혼은 처음이다. 그리고 친척들 사이에서 나의 결혼 또한 처음이었다. 익숙함을 벗어나며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공존한다. 결혼은 남편과의 삶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또 다른 이별이기도 했다.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내가 자율적으로 방향을 선택할 수 있지만, 반대로 편안한 둥지를 깨고 내 둥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매일 처음인 하루가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학생 때는 분기별로 새 학기를 맞이하며 나를 다잡을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된 이후론 "처음"을 맞이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혼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나를 다잡을 기회가 이따금씩 생긴다. 연애할 땐 상대방인 남자 친구만 배려하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얽히고설킨 관계 뭉치들 때문에 그를 배려할 마음 구석이 많이 없어진 게 나의 큰 흠이랄까.


나의 처음은 누군가의 또 다른 처음이기도 하다. 결혼을 통해 나의 가족과 그의 가족은 또 다른 가족이 되었으니까. 나의 처음이 행복하고 밝을수록 그들의 처음 또한 함께 밝아질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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