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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Dec 05. 2019

당신의 비행은 안녕하신가요

오랜만에 다시 나의 비행을 꿈꿉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학생들의 글을 뽑아 그녀의 목소리로 낭독해주셨다. 그 목소리가 참 좋았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내 글이 있었으니까. 인천에서 제일 크다는 새얼 백일장에 추천을 받아 나갔다. 당시에는 글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유명한 작가가 될 것만 같았다. 일장춘몽 같던 중학교 2학년 시절이 지나 우연히 베스트셀러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여러 곳에 붙어 하버드 한 곳을 골라 간 신동 언니의 책. 그 책을 보며 언니처럼 꼭 국제변호사가 돼서, 유명해져야겠다며 꿈을 꾼 게 엊그제 같다.


조금 더 시간을 돌려보면 그때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또박또박 뉴스를 읽어주는 아나운서 언니들이 참 '예뻐 보였다.' 나의 결혼식 날 사회를 봐주던 나의 아나운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그랬다. 


이 모든 게 이뤄질 수 있으려면 정말 공부를 잘 해야한단말이지.


이 모든 게 이뤄질 수 있는 방법은 공부라고 생각했다. 공부가 전부였던 그때, 그리고 공부만이 내 살길이라 생각했던 어느 하루. 손바닥만 한 종이 쪼가리를 받고 참 많이도 울었다. 딱 두 계단이 떨어졌는데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인 서울은 택도 없을 거라며 인생의 쓸모를 논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를 만나 어깨 한 번 툭 쳐주고 싶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도 충분히 많다는 사실을.


비행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무던히 노력했다. 일단 학생 신분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게 칭찬받는 지름길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했다. 무식하게 공부만 해서 되는 건 아닌데도 문제집을 사재기하고 쌓아두고 펼치지 못한 문제집이 절반이나 됐다. 취업 준비생이 돼서는 또 미련하게 자기소개서를 썼다. 입사도 연애와 똑같은 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제야 그들에겐 전혀 매력 없었을 내게 받았을 그 수많은 연애편지들을 다시 돌려받고 싶다.


사춘기 때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청개구리 기질이 왜 서른이 돼서야 보이는 걸까. 주변에 우려의 시선을 무릅쓰고 프리랜서의 길을 걸어온 지 어언 7개월이 지났다.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프리랜서가 된 나는 직장인일 때와는 다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느지막이 한시쯤 커피와 노트북을 들고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다. 직장인일 때는 분명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취업준비생이라는 편견으로. 지금은 나랑 똑같은 프리랜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들리지 않는 박수를 힘차게 보낸다.


갈매기가 비행하는 목적은 그리고 이 세상에 나온 것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먹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라던 <갈매기의 꿈> 안 부족장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삶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면서 사는 삶은 정말 각박하다. 날갯짓의 의미가 그저 먹고사는 것을 위한 행위라 규정짓는 것은 과정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다. 


낭만을 향해 날갯짓을 한다고요?


먹고사는 문제는 사실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나 역시 낭만을 찾아 프리랜서를 선택했다고 할지라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초연하지 않다. 하루살이 프리랜서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행복한 이유는 '내 마음대로 비행할 수 있어서다' 조나단처럼 비행 연습하다가 가끔 비틀거리기도 하고 진짜 높게도 날아보고 낮게도 날아보며 세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습을 해본다.


실패를 쉬이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 앞에 꼬꾸라진 우린 그렇게 공무원과 취업준비에 매달린다. 갈매기들도 '공중에서 실속 하는 것은 갈매기에게는 수치이며 불명예다'는 말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나단의 비행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조나단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냥 비행이 좋았던 그는 똑같은 날갯짓을 구사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높게도 낮게도 날아보며 세상을 자유자재로 넘나 든다.


각자 날갯짓에는 그만한 의미가 있음을.


그냥 내 마음대로 날갯짓해보면 뭐 어떤가 싶다. 요즘 회사를 나와서 자기 맘대로 세상을 날고 있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고작 7개월인데 회사를 다닐 때보다 딱 세 배 정도 '능력'이 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진짜 신기한 게 회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나단 같은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모든 날갯짓은 분명 의미가 있다. 먹이를 향한 갈매기의 삶의 가치는 바로 생존으로 우리가 살면서 꼭 기본적으로 쫓아야 할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유의미한 날갯짓은 생각이다. 직업을 선택하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려놓은 밑그림에 원하는 색을 덧입히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대로 일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본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했고 그것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갈매기의 꿈> 조나단의 말을 끝으로 기어이 나의 비행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수련을 통해 진정한 갈매기를, 각자의 안에 깃든 선함을 봐야 하고, 그들 스스로 그것을 볼 수 있게 도와야 하는 거지.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란다. 그것을 터득하게 되면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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