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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Nov 21. 2019

여전히 화장을 못하는 서른이라니

이제 무거운 짐을 벗어던져도 될까요

아홉 시에 있는 수업을 부지런히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광역버스를 타고 고속도로가 막히기 전에 재빨리 빠져나와 4호선 지하철에 자리를 잡는다. 가방에 큰 파우치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두고 얼굴만 한 거울을 한 손에 든다.


4호선 지하철 민폐녀 아마도 그게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끼니를 고르면 좀체 기력을 쓰지 못했기에 먹어온 아침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선순위가 아닌 화장은 굳이 내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눈썹을 잘 다듬지 못해 놀림감이 된 스물


고등학생 때부터 남자 친구를 사귄 덕택에 화장을 잘할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그 누구보다 화장에 서투르다 못해 버겁다는 말이 딱 적당하다. 물론 남자 친구를 만나며 틴트도 입술에 떡칠해보고, 비비크림도 발라봤지만 그게 다 일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화장이 잘하고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화장은 어떻게 해야 돼?"

"그냥 하다 보면 다 돼~"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화장품 로드샵에 한 발을 들여놓는다. 쓰임새도 모르는 도구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자 점원은 옆으로 다가와 앵무새처럼 녹음 해 둔 말을 시작한다. 첫 로드샵 방문은 그렇게 실패했다. 그녀의 말을 믿어선 안 됐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눈썹 다듬기에 서툴렀고, 실제로 나의 결혼식날이 돼서야 십 년 만에 눈썹을 다듬는 거 같다며 그 엄마에 그 딸임을 증명해주셨다.


화장 도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직도 뭘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섯 살 어린 난 화장실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턱에 있던 아빠의 수염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게 신기했다. 아빠의 얼굴을 곰곰이 살피던 내가 사십 분 동안 화장실에 들어갔고 그 일이 일어났다. 내 얼굴을 보면서 '나는 왜 수염이 자라지 않는 걸까? 나도 털을 밀어보고 싶다!'는 번뜩이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그 생각을 멈췄어야만 했다. 머리카락을 밀 순 없으니까, 마법을 부린다고 한 게 잘못 부려 반쪽 눈썹을 덜컥 밀어버렸다. 한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던 어린 딸내미의 얼굴이 살짝 어색해 보인 걸 감지한 우리 아빠는 몇 분을 찬찬히 뜯어봤단다. 뭐지. 뭐가 이렇게 달라졌지 하다가 두 분은 화들짝 놀래다 딸내미의 행각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이런 사건이 터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난 엄마의 딸이었기에 눈썹 깎기는 내게 기술을 요구하는 무엇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와 친하디 친한 사촌들은 나만 보면 '왜 그래, 눈썹이?"라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들의 입에서 눈이라는 말이 나오면 응당 '눈썹을 말하는구나'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 이후로 눈썹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반토막 내버린 어린 다섯 살의 나를 여전히 원망한다. 없는 눈썹을 한 땀 한 땀 그리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만 알겠지.


화장하지 않으면 예의 바르지 않은 걸까


사회생활 전까지 어느 정도 능숙하게 화장 기술을 익혔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됨과 동시에 완벽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능숙한 화장은 필수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남 대로변에 나갔을 때 대다수의 여성 직장인은 아이라이너, 볼터치를 하고 길거리를 누볐다. 지금껏 볼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그제야 친구들에게 볼터치를 추천받았다.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몸에 익지 않는 게 내겐 화장인 것 같다. 능숙하다고 생각했건만 출근과 동시에 또 웃음거리가 됐다.


"야, 진짜 화장 못한다. 여자는 화장 잘하는 것도 예의야! 예의!"


무슨 의도에서 던진 말인지 모르겠어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 눈빛을 피하며 화장도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무슨 사회생활이냐던 그의 말에 으레 수긍해버린 그 당시의 나를 다시 생각하면 ‘참 어이없다’. 당연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자는 화장을 잘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발라본 적 없던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내 얼굴보다 두 톤이나 높은 21호의 팩트를 구매해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 밖으로 나선다. 그들에게 나는 일도 잘하고 ‘아름다운’ 열심히 사는 여성이 되어야만 했다.


내가 아닌 것만 같아 자꾸 어색한 웃음을 짓게 됐다.

두꺼워지고 점점 하얗게 변했다. 육안으로 보기에 얼굴이 밝아졌을지 몰라도 내면의 빛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웃음기가 사라진 채 하얘진 내 얼굴을 본 그들은 ‘시크해졌다’ 뒤이어 ‘싹수없다’며 나의 미를 평가절하한다. 예의 바르게 보이려고 한 화장인데 그들은 나를 또 싹수없는 일개 사원으로 취급했다.


순서를 어기면 안 된다는 진실


피부 트러블이 나지 않는 편이라 맞는 기초 화장품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뭘 발라도 자연스럽게 소화시키는 피부녀석에게 고마움을 느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아기 다루듯 다룬 적도 드물다. 그래서 화장 순서도 엉망진창이었다. 로션을 바르고 스킨을 바르거나 수분크림을 바르고 세럼을 바르는 행동 탓일까. 여드름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와 말썽을 부리고 피곤하면 뾰루지가 미간 사이에 위치해 얼굴을 해친다.


지하철을 탈 때도 교통 카드를 찍고 들어와서 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아야 하듯이 화장하는 순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수분을 채워주기 위해 스킨을 고루 펴 발라주고, 그리고 계절에 따라 수분크림이냐 보습크림이냐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발라준다. 순서대로 진열해 놓은 화장품이 무색하게 그냥 마구 바른다.


여전히 화장을 못하는 서른이라니


나를 꾸밀 줄 모른다. 모든 걸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더 편한 단순한 사람이다. 상대방과 말을 하다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입술을 자꾸 먹는다. 그리고 집중하면 입을 닫았다 열었다 반복해서 결국 본연의 탁한 입술 색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또,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가방 안에 파우치를 꺼내 지퍼를 열어 립스틱 뚜껑을 여는 데까지 총 몇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아니 메이크업을 시작하는 것도 이젠 내게 사치다. (어쩌다보니 변명 투성이다;)


여전히 화장을 못하는 어리숙한 어른이다. 한 작가님과 1:1 멘토링을 하던 그 날. 분명 화장하고 갔는데 내 얼굴을 보시더니, 쌩얼로 왔다며 말을 하시던 그의 말에 난 '아직도 멀었다'. 지하철 타고 교복 입은 열 살 어린 동생들의 메이크업 기술에 화들짝 놀래며 내 얼굴을 확인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 어쩔 수 없다며 이내 포기한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나보다 열살 정도 많아보이는 한 언니의 얼굴이 눈 앞에 보였다. 바른 듯 안 바른 듯 투명한 피부에 살짝 얹어 놓은 투명한 립글로스가 그녀가 꾸민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얼굴과 웃을 때마다 언뜻 보이는 주름이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그 이후였을까. 본연의 내 얼굴색을 애정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 때수건으로 뻑뻑 얼굴을 문지르던 그 모습이 떠올라 그때의 내가 애처롭다. 새까매도 난 나인데. 그냥 내 얼굴 위에 로션만 발라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왜 나를 위한 화장법을 몰랐을까 다시 떠올려본다.


그냥 원래의 날 사랑하기로 했다. 무얼 바르던 어떤 걸 칠하던 난 나였다. 그런 내 모습을 꾸밈없이 사랑해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눈썹을 잘 다듬을 줄도, 굳이 배울 필요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홀가분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한 꺼풀씩 내려놔본다. 아이쉐도우를 그다음엔 볼 터치를 포기해본다. 머지않은 미래에 맞은편에 앉아 은은한 웃음으로 책을 보던 그 언니처럼. 그저 립글로스만 바르고도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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