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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Nov 19. 2019

오늘도 내가 야근하는 이유

찾아줘 내 워라밸

눈이 뻑뻑해서 감았다 떴다를 여러 번. 그래도 컴퓨터를 끌 수 없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인가 보다. 이놈의 회사는 지금 주 52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는데도 직원들의 복지 따윈 안중에도 없다. 속눈썹이 중력의 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축축 처진다. 바닥까지 내려간 에너지를 위로 끌고 오기 위해 노란색 비타민을 뜯어 입에 탈탈 털어놓는다.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두 시. 아니면 세 시를 넘기는 것도 부지기수다. 일찍 잠에 청하려 해도 머릿속 정신은 아직 말짱하다며 날 가만두지 않는다. 생각과 동시에 머릿속에선 꼬리를 문 기차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생각 기차가 탈선하지 못하도록 머리 위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든다. 핸드폰으로 쓰다가 결국 안 되겠다 싶으면 책상 위에 있는 내 보물단지 앨리스를 들 수밖에. 


자발적 야근러가 탄생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야근한 게 2주를 넘어간다. 원래 야근을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야근 혐오자인 나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일정한 업무시간인 프리랜서는 퇴근시간도 내가 정해두어야 한다. 프리랜서 선배들에 따르면, 꾸준하게 일을 지속하려면 직장인들과 같은 9 to 6의 패턴을 지키거나, 나만의 패턴을 만들라고 말씀하시던데. 그게 쉽지 않다. 


이직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야근을 한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제시간에 앉아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능력이 있다.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계획에 맞춰 계단식으로 오늘의 마감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만 쉬어가기로 하자.


야근을 하는 이유는 아주 많지만 크게 습관형, 업무과다형, 욕심형, 마지막으로 사랑형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습관형의 경우 말 그래도 야근이 습관이 된 케이스다. 열명 중에 여섯은 업무과 다형으로 업무량을 이기지 못하고 시간 외에도 업무를 지속하는 경우다. 그리고 욕심형은 신입사원에게 많이 보이는 징후로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혹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야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내 의지라곤 1도 없는 습관형 야근


회사를 다닐 때의 난 칼퇴근의 대명사였다. 정해진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할 때마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나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분명할 일을 다 끝내고 가는 것임에도 그들은 나를 얄미운 후배로 낙인찍었다. 의리도 정도 없는 아주 차가운 후배. 그렇게 자연스럽게 습관형 야근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칼퇴할 수 있는 거도 감사해야 해.


과장이었던 그는 내가 퇴근할 때마다 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우리 땐 2주에 한 번씩 제시간에 퇴근시켜주는 것도 감사히 여겼다면서 말이다. 게다가 퇴근할 때마다 오늘은 또 '어디 가냐'라고 물으며 '보고'를 종용하는 그를 처음에는 두렵게 여겨 습관형 야근을 하게 됐던 거였다.


나는 업무과다형과 욕심형, 어느형 인간인가


어느 회사든 업무량이 적절히 분배된 회사는 찾기가 어려운 걸까. 사실 회사에서 직원을 더 채용해서 일을 고루 분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맞지만 이는 우리 바람처럼 쉽지 않다. 2년도 채 되지 않는 신입사원들이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떠나는 이유 역시 업무과다로 인한 야근이 주원인이었다. 


한창 승진이 시작될 대리부터 과장 그 사이의 직급들은 같이 들어온 동기보다 앞선 승진이 필요하다. 목적이 생긴 이상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욕심을 부린다. 그중에서도 제일 쉬운 건 야근하기. 야근을 통해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도 그리고 그만큼 나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게 이들은 욕심형 야근을 시작한다.


도대체가 난 업무과다형 인간인지, 욕심형 인간인지 헷갈린다. 아직까지 신입사원 정도 수준이라 그렇다 할 능력은 없는데 많은 일을 욕심껏 받는다는 느낌이 있다. 나라는 회사가 충분히 크지도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선 적당히라는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순 같은 우리네 인생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자꾸 발생한다. 야근을 싫어했던 내가 새벽 네시까지 책상에 앉아있는다. 글감은 계속 생기고 하고 싶은 말이 점점 많아진다. 해가 떨어진 밤에 스탠드를 켜면 하고 싶던 말이 술술 써진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환한 등에 스탠드를 켜놓고도 꾸벅꾸벅 조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젠 잠이 오질 않는다.


생각보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바깥에서 서로 빨리 가겠다고 경쟁하는 차들의 클락션 소리도 누군가를 찾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도, 모든 소리가 땅 깊은 곳으로 잠을 자러 갔다. 자꾸 누군가를 찾고 부르고 빨리 해내야 하는 우리들. 그 시간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을 준다. 


결국 야근의 유형을 다시 정의 내려본다.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버린 거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면 다시는 일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내가 모든 삶을 내가 할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삶의 '주인의식'이 생겼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다.


글을 좋아한 이유를 다시 떠올려본다. 혼자만의 투쟁. 나만의 공간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마력의 행위. 야근을 혐오했던 습관형 야근에서 사랑형 야근으로 변신했다. 혼자의 투쟁을 위해서는 쥐 죽은 듯 조용한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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