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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May 10. 2020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쩌다, 창업을 도전하게 됐을까

정식적으로 프리랜서로 살겠다 선언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 비공식적으로 내 일기장에 써 놓은 날짜를 보니 딱 이날이었다. 이렇게 또 다른 시작을 공표할지 꿈에도 모른 채 호기롭게 프리랜서로 살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이 '힘들지 않겠어?'라는 반응과 눈빛이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은 예외였다.


내 인생 잘 살고 있는 걸까?


매달 25일. 어김없이 0이 여섯 개가 들어가 있고, 맨 앞에 한 글자에 따라 울고 웃는 나날들이 반복됐다. 분명 곳간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게 내 눈에 보이는데 반대로 마음은 점점 하나씩 뺏기는 기분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마음을 들고 회사를 들락날락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회사 회전문으로 본 어느 날, 일기장에 또 이렇게 나를 위로한다. 잘 버텨냈노라고. 매일 밤마다 일기를 썼지만 일기는 그저 단편적인 넋두리일 뿐이었다.



잘 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시작된지는 오래지만, 욕망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건 고작 몇 년 전의 일이다. 20대 중반, 보편적으로 돈 잘 버는 게 잘 사는 삶의 기준이라는 주위 시류에 휩쓸려 나 역시도 그렇게 흐름에 편승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꼬박꼬박 돈 벌기를 한 지 2년 하고도 반년이 되었을까. 


정신 지향적인 나에게 있어 물질, 곧 돈을 향한 동력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건 인내였다. 참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모든 걸 호기롭게 내려놓겠다고 결심한 건 온전히 내가 나를 믿어서만은 아니었다. 분명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관계를 통해 내 삶의 방향 생각해보기


회사를 그만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관계에 있었다. 상하관계가 유달리 심한 사회생활 속에서 관계의 압박을 지나치게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기란 어려워졌다. 입을 꾹 다물고 답답한 상황이 오더라도 넘어가다 보면 억울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새로운 기획이 가로막힐 때마다 오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했었더라면' '이걸 한 번 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 매일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조직생활에서 힘들고 지치면 자연스럽게 말할 사람은 남자 친구(현, 남편)이었다. 이렇게 군대 제대 후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서로 둘이 서운함에 싸울 때도 우리의 욕구는 단 하나였다. 


먼저, 함께 대화할 시간이 있는 삶. 두 번째로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삶.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부분은 하고 있는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삶이었다.


그렇게 그에게 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음을 말했다. 그때 나의 첫 번째 시작이 시작됐다. 브런치 작가로의 삶과 글 쓰는 작가로의 삶. 아직 완벽하게 1차전을 치르진 못했지만 지난해 스스로 정말 치열한 한 해를 보냈음을 나만은 잘 알고 있다.


그냥 나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순 없을까?


회사를 다니더라도 '나 자신'은 여전히 애틋하고, 여전히 소중했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면서 본인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누구도 읽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관심은 나만이 아닌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 시대부터 있었다.


브랜드란 단어는 노르웨이 고어인 'brandr'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단어는 '태운다(to burn)'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뜻이 말하듯 고대 유럽에서 가축의 소유주가 자기 가축에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명시하던 사례에서 파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자신이 소유한 물건이나 자기가 만들어 내 물건에 대해 표식을 함으로써 소유관계를 분명하게 했다. 



돌아보면 모든 기준은 보편적인 사회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다. 좋은 학교를 향한 입시 경쟁 그리고 네임밸류가 있는 대기업을 향한 취업의 문을 열고 나면 그 이후 해야 할 일에 대해 우리는 배워본 적 없다. 어른들은 결혼이라고 말들 하시지만, 결혼은 우리에게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만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점점 커지면서 개인적인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개인적인 삶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근본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원래 나의 브랜드 제품은 작가였다. 그런데 작가이자 강사로 병행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잘 사는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고, 교수님도 아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향은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화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만큼, 청자로의 역할을 잘하는 만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이번 해 2월. 우연한 듯 자연스럽게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사회적기업가로 지원을 받게 됐다. 지난 해 내내 생각해왔던 것. 꿈꿔왔던 이야기를 풀어놓아 보았다. 처음엔 지역주민 혹은 엄마들을 위한 독립서점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안에서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기획하는 것으로 변신했다. 내가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청년이기 때문에 조금 더 청년과 대화하는 일을 시작해보려 기획하고 있다.


잘 사는 삶을 사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 있었던 마음 깊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들을 수 없을 땐, 곁에 누군가 청자 한 명이라도 있다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변화하게 된다. 분명히. 커뮤니티 기획자이자 프로젝터로의 창업.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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