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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11. 2020

종이에 손을 베었던 날

생각보다 사소하지 않았던 날들

손에 물이 닿았다. 검지 손가락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세면대에 서 손가락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살갗이 벌어져 있었다. 도대체 언제 베인 거야? 어제 책 읽다가 그랬는지, 아니면 일을 하다가 종이를 넘기다가 그런 건지.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때 그랬겠다 싶었다.


왼쪽이 다 나았다 싶었는데 오른손이었다. 원체 펜을 많이 들어서 나의 중지 손가락은 울퉁불퉁해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었던 옛 습관 탓에 내 손가락은 그다지 예쁘지 않은 투박한 모습을 띄고 있다. 예전에는 창피해서 보이지 않게 손을 숨겼던 것 같은데 이젠 그냥 내 손이니까, 글을 써 주는 소중한 놈이니까 아껴주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얇은 종이가 나를 아프게 한다


기타를 치는 나의 남편은 다른 사람보다 손에 유독 민감하다. 내 손의 변화에 대해 잘 물어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편인데, 내가 종이에 손을 베면 속상해하는 걸 넘어서 답답해한다. 최근에는 종이 외에도 설거지를 하다가 날카로운 가위 혹은 칼에 내 손이 고통받는 걸 보면 속상한 마음에 내게 핀잔을 주곤 했다.


이 많은 책들 사이에 고작 딱 한 페이지가 내 손을 그렇게 아리게 했겠지?


손가락으로 물건을 잡을 때마다 아픔이 느껴진다. 세게 집을수록 상처는 더 벌어지고 아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약하게 잡아본다. 내 손가락 사이로 물건이 맥없이 툭 바닥에 떨어진다. 돌아보니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할수록 쉽게 상처를 받고 상처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 내 남편과 관계가 딱 그렇다.


분명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건만


코로나 이후, 나와 남편은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느지막이 잠자고 일어나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같은 시간과 공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단어를 던졌다.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지만 서로의 마음에 알게 모르게 종이에 베이는 것처럼 생체기를 내고 있었다. 애매하게 사과를 했는데 별 의미가 없었다. 베인 손가락에 데일밴드를 붙인다고 해서 바로 낫는 게 아닌 것처럼. 데일밴드 붙인 손이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매달 데일밴드를 구매해야 한다.


매일 같이 보는 내 손인데도 애잔하다. 그렇게 애잔하게 나와 그를 바라본다. 강산이 변할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애잔할까. 내가 종이에 똑같이 손을 베이는 것처럼 왜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여전히 단어를 던지고 있는 걸까. 내가 던지는 단어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게 분명한 걸 알고 있음에도 지고 싶지 않았던 걸까.


또 다른 사소한 일들이 내 마음을 할퀼 때


사무적인 이야기 안에서도 애정이 느껴졌다. 분명 더 잘 해내길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질문은 딱딱했다. 그리고 날카로웠다. 긴장한 상태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촉수를 곤두세워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나의 신체 기관이 긴밀하게 가동된다. 촉수를 세운 상태에서 다른 어느 때보다 분명 이성적인 상황이었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금 뭐가 제일 힘들어요?"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질문이었다. 돌아보면 내 마음이 그렇게 허락하지 않았다. 성격상 그냥 포기하고 웃어넘기거나 돌아서는 시간이 존재했다.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제 3자의 질문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나를 다 아는 듯한 질문이 손가락에 닿은 물처럼 화학작용을 한다.


질문이 내 마음에 퍼즐처럼 꼭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는 별다른 뜻이 없었다. 답변에 대한 답을 주고 싶었을 텐데 그 사소한 질문이 마음의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쓰라리다 못해 아팠다. 차마 답하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하고, 버려지고 가치 없는 존재라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싫다."(다른 사람, 강화길)이라는 대사는 나의 삼십 평생의 문장이다.


감정을 취사선택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기에 일기를 쓴다. 내 일기장 안에는 오만가지 감정이 그득하다. 감정을 늘어놓은 탓일까. 내게는 당연한 감정들이 없었다. 하나같이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꾸 물음을 던지다 보면 나를 이해할 수도 있었고, 상대방을 이해할 여력도 생기기 마련이다. 요즘 내가 여력이 없는 이유는 뭘까 고민해보니 잠깐 일기를 쉬어서 일 수도 있겠다. 다시. 일기장을 편다.


삶은 늘 이렇다. 사소한 틈 사이에서 소중한 걸 발견한다. 이성복 시인의 말이 기억난다. '신기한 것들에 한눈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라는. 매일 펼쳐지는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아야 또 다른 보통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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