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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l 17. 2020

생각보다 빈틈이 필요한 거더라

다시 느끼는 틈의 의미

딱 여덟 살 때였다. 외할머니댁 마룻바닥을 밟으며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좋았다고 느꼈던 게. 시간이 지나 조금씩 나무가 삭아가며 아주 작은 틈이 생기는 그 소리. 소리 나는 곳을 왔다 갔다 하면 그만하라고 하던 할머니의 끈덕진 잔소리. 매일 갈 때마다 밟던 그 마룻바닥은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사라졌다. 딱 엄마 나이만큼 해를 보낸 그 집은 운명을 다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틈이 좋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으로 조금씩 들어가 그 사이에 앉아 있는 것도. 외할머니댁 마룻바닥을 걸으며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듣는 틈조차도. 그렇게 틈을 좋아했던 내가 이제 빈틈을 응시하고 즐기는 것조차 사치가 된 것 같다.


삐그덕 소리가 들리는게 그렇게 좋았다


빈틈의 의미


'말 없는 자는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말을 많이 하면 내 말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도 그랬다. 과묵한 사람 앞에 가면 말의 공백이 공간의 공백으로 그렇게 관계의 공백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서로 들어올 틈을 주면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건데 그땐 그 사실을 몰랐다.


조금의 빈틈을 주지 않는 사람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다. 화자가 전달하고 싶은 게 많은 글은 정보가 많아서 정작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몇 개 없는 것처럼. 움베르트 에코도 '우리 인생은 비어있는 시간으로 가득 차 있어. 빈틈을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자꾸 다툼이 잦아지는 이유


부쩍 남편과 다툼이 잦아졌다. 오랜 시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도 불구하고 맞춰갈 것들이 많은 건가. 싸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정리해보면 비슷한 이유가 있다. 상대에게 기대했던 것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상대의 상황이나 이유는 고려하지 않은 채 내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서로에게 불만이 켜켜이 쌓여가게 된다.


이젠 서로의 틈을 허용할 때도 됐는데


개인의 틈을 허용하지 못한 우리는 결국 싸운다. 가끔 삐그덕 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를 견디지 못했던 우리는 벌어지고 있는 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잦아지는 다툼 속에 공간의 정적은 점점 늘어가고 서로를 향한 기대감은 조금씩 사라져 간다.


나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야


인정한다. 빈틈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은 내가 오늘 뭘 먹었는지 딱 알아맞힌다. 매일 티셔츠에 빨간색, 흰색 흔적을 남기는 게 내 일상이다. 그리고 꼭 현관문을 나설 때면 남편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핸드폰 충전기는, 지갑은, 잊어버린 거 없어? 누군가에게 챙김을 받는다는 게 나쁜 느낌은 아니지만 집을 나설 때마다 자꾸 자책한다.


아주 가끔 생각한다. 가까운 존재에게 내가 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점. 나를 버거워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불현듯 떠오르는 마룻바닥 밟는 소리. 나라는 사람은 공간의 빈틈을 좋아했는데. 분명 그 빈틈이 주는 생명력이 있는데...


틈은 사람과 공간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닌 시간에도 존재한다. 시간의 공백은 의외의 행복감을 주곤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며 누리지 못했던 것이 시간의 공백이었다. 지금 삶을 살아가며 낮에 지하철을 타는 시간도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에 앉는 호사도 빡빡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가끔 그런 일도 있다. 남편과 틈이 맞으면 함께 호수가 보이는 카페라도 찾아가는 시간이 생겼다.


커피를 급하게 마시다가 쏟기를 일상. 이제 손으로 온기를 느끼며 찬찬히 식혀본다.


요즘 난 틈이 없으면서도 있다. 시간의 쉴틈 없이 일이 들어오는 대로 바삐 움직이며 하루를 바투 산다. 일분일초가 지나가는 게 아까워 한 템포를 쉬는 것도 사치일 때가 있다. 밀려들어오는 연락을 한 개라도 놓치면 나중에 올 쓰나미가 두렵다. 시간의 빈틈이 없어질수록 내 행동은 점점 틈이 벌어지다 못해 듬성듬성 텅 빈 공간이 보인다.


이젠 정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관계의 빈틈이 주는 미덕을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매일 하던 생사확인을 안 해도 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가끔 갑작스러운 연락이 오면 반갑게 맞아주면 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는 빈틈없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길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틈을 주면 누군가가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 꽉꽉 채워진 서로의 모습만 바라는 것일 뿐.


관계도 시간도 아주 미세한 빈틈이 생긴다 해도 결국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빈틈이 있단 걸 인정하고 채우지 않고 가만히 지켜봐도 언젠가 나 자체가 된다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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