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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Oct 11. 2021

그때 그 열차를 탔어야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들

(아주 살짝, 스포의 기운을 담아 써 놓은 글입니다. 어쩌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달까지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말. 찝찝했다. 항상 예측하는 버릇이 문제였다. 이 책의 결말은 분명 새드엔딩이길 바랬다. 너무나도 치열한 내 삶에서 여전히 해피엔딩을 찾기란 너무 어려우니까. 그런데 웬걸. 해피앤딩이었다(?) 주인공은 카라멜 맛 푸딩을 혀로 음미하며 '달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퇴사를 할지 말지는 그저 선택지였다. 


인생은 생각보다 쓰다는 걸 느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오지선다를 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선택지가 많지. 다섯 가지의 선택지 중에 한 가지를 고르라니. 너무 가혹하잖아. 25%의 확률로 내 점수가 갈린다는 게 억울해서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선생님이 되면 말이야. 애들에게 50%의 확률로 문제를 맞힐 수 있게 해 줄 거야." "와, 진짜 획기적. 좋은 쌤이네."


내 생각은 오답이었음을


내 삶에는 지금 딱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50%의 확률.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이 내 앞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때처럼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삶에는 안타깝게도 정답지가 없다. 그나마 더 나은 답을 선택하기 위해 치열한 고민만 있을 뿐.


정답지가 많은 것보다 없는 게 좋을 줄 알았건만, 지금 돌아보니 인생에는 정답지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습성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내 옷차림. 내 말투. 내 행동 그 모든 것들. <달까지 가자>의 다해와 그 일당(은송, 지송)도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말로 본인들을 통칭한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 다니더라도 다른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벽 앞에 가로막힌 사실이 암담할 뿐이다. 본인들끼리만 통용되는 대화를 위해 회사 앞에 있는 스타벅스를 가기보다 5분을 더 걸어가야 나타나는 커피빈으로 향한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회사원이었던 나의 점심시간이 오버랩됐다. 모든 주제는 일 못하는 상사. 아니면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건 아주 가벼운 안줏거리일 뿐. 씹어야 할 것은 그것이었다. 어디서 난지 모를 돈이 많은데 아니면 부모님 덕분에 여유롭게 살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만 같은 사람들.


버티다 보면 볕뜰날이 오겠지


여전히 집 값은 폭등한다. 요즘 친구들과 함께 매일 씹는 안줏거리로는 부동산이 있다. 분노에 가득 차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오르내린다. 그 누구도 믿지 말았어야 한다며.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매매로 샀어야 했다며. 처참히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온몸으로 받아낸 우리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걸까.


이런 나와는 달리 은송이는 건물을 샀다. 자산가가 된 그녀는 건물을 산 이후에도 부동산을 돌아보며 어느 땅이 금싸라기인지를 찾는다. 뭔가 한 마디라도 은상이 자신을 수틀리게 하면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게 익숙해졌다. 매일 같이 움츠리던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는 그녀가 사실 부럽다. 나도 그렇게 싹수가 없었으면.


<달까지 가자> To the Moon


억울하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는 없다는 사실이.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을 해 본다면. 검색을 해 봤다. 이미 끝난 시장인걸. 누군가는 내게 '영끌했는데. 끝났어. 반토막 났다 야. 지금 들어가면 백 프로 손해야 손해.'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올까


손에 땀이 났다. 커브를 그리며 하늘을 향해 올라갈 때, 나는 기대했다. "이제 떨어질 때가 됐는데." 언제 떨어지는 거야. 처참한 마지막이 궁금했다. 드라마 주인공의 로맨스를 볼 때는 그렇게 해피앤딩이기를 바라면서 왜 이들의 팍팍한 삶은 새드앤딩이길 바란 걸까.


아마도 이런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모래알처럼 작고 약한 걸 긁어모아 알알이 쌓아 올리고 있었지만 그걸 쌓고 쌓아서 어딘가에 도달하리라는 기대도 희망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을 알알이 쌓아 올리고 있지만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점은 어디인지 잘 모르기에. 분명 그들의 삶 역시 미완성인데도 다해와 그 일당들처럼 나도 비교하고 있었다. 그만한 돈이면 '충분하다'고. <달까지 가자>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까. 참, 그런데 나한테도 그런 순간이 오긴 올까. 한 번 들어봤을 때 그 열차를 타 봤으면 어땠을까. 나도 다해처럼. 아니 은상이와 같은 결말을 맞을 수 있었을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달까지 가자>의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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