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으로의 복귀

이제 2차전 시작하려고 합니다

by 허예지

오랜 연애를 했음에도 권태기는 참 곤혹스러웠다. 상대방은 별 행동을 한 게 아닌데 그냥 내 앞에 있는 것도 매일 불편했다. 심지어 같이 있는 시간이 싫어서인지 째깍대는 시계 초침마저 거슬렸다. 바쁜 척 자리를 피해버리는 그 애매모호한 행동들. 홀수 주기로 오는 권태기라는 친구는 싫다고 절교를 선언했지만 여름더위마냥 끈끈하고 끈질겼다. 비겁한 변명임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는 기다렸다. 묵묵히.


구구절절 역시 또 변명을 하자면 정말 바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했고 나의 팀을 꾸려나가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기획안만 눈으로 훑고 또 다른 기획안을 작성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글테기?”


1년도 채 안 된 조무래기 작가가 무슨 글테기냐고 변명하지 말라고 손가락질하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겠다. 글을 쓰려고 연필을 잡았을 때 갑자기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도구 탓을 했다. 설마 연필이 아니라 샤프? 다음에는 만년필로 해 볼까? 손에 있는 건 만년필이요, 책상 위에 있는 건 '종이다'라고 생각해보던 그때. 째깍대는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키워드를 보면 기억나는 게 있었는데


글쓰기 강의를 할 때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게 있다면 당연히 메모였다. 그냥 메모하는 게 의미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집중하고자 하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는 게 바로 진짜 메모다. 물론 메모를 한다고 해서 다시 펼쳐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책을 만들 때나 글감이 나오지 않을 때 펼쳐보면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있음에 감탄할 뿐.


이렇게 뜯어 낼 종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원래도 기억력이 좋지 않았던 난 요즘 부쩍 건망증 열매를 많이 먹었나 보다. 키워드를 봐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페이지를 펼치고 그 날 찍었던 사진을 확인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잔상을 더듬거리다 보면 기억 저편에 스토리가 떠오른다.


괜한 이유를 만들어내면 남자 친구를 만날 시간은 사라지듯 펜을 잡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무리를 해 빼놓지 않으면 한 편의 글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설렘을 안고 무리 없이 한 편의 글을 썼던 것도 같은데.


그 날이 왔다, 갑자기


작년에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올해 시작은 두근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전 세계에 코로나란 역병이 퍼지기 전까진. 우리의 일상을 삶을 점령하리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암흑 속으로 삶을 삼켜버렸다. 올 초까지 일이 없었던 건 견딜만했지만, 학기초부터 취소, 취소 연속적으로 취소되는 일정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에 구름이 드리웠다.


2020년이 시작되는 첫 번째 달 마지막 주. '작가님에게 요청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메일을 열었다. 처음 받았을 땐 손이 덜덜 떨렸는데 이젠 '별거 아니겠지' 특별한 기대감 없이 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2020년을 맞아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젊은 작가분들을 모시고 강연과 이야기를 통해 지역주민들에게 책 읽는 재미와 오늘날의 감성과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작가상봉'이라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날씨까지 나를 괴롭히네. 쓰는 거 그만해야할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7월 마지막 주 수요일. 지하철부터 도서관까지 가는 길목에 물웅덩이를 밟았다. 샌들이 축축하게 젖었고, 바지에 흙탕물이 튀었다. 시작 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았을 텐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걷다가 우산이 뒤집어졌다. "아, 불길해."


포기를 잘하고 시작도 쉬운 사람인데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쏟아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던 강연장. 하나둘 씩 자리를 채우고 딱 다섯 사람을 위한 강연을 시작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다부진 얼굴로 앉았지만 불길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던 그때.


"저는 예지 작가님을 주식으로 비유해서 소개하려 합니다. <저평가 우량주> 분명 좋은 평가를 받으실 분이라 생각하기에 저희 도서관에서 먼저 초정했어요."


한 달 동안 사업화 생각하랴, 팀원들과 아이디어 회의하랴. 작가라는 본캐가 희미해지던 그때. 한마디 덕에 오른손으로 펜을 잡고 내 본캐를 다시 그려봤다. 그리고 신나게 준비한 한 마디를 다섯 사람의 마음에 닿을 수 있게 노력했다.


혼자말하는 것보다 듣는 사람이 되는 게 낫겠다 싶다. 잘 들으면 또 더 잘 쓴다.


포기를 잘했고 그만큼 시작도 쉬웠다. 딱 한 번. 퇴사를 하고 1년 간 아예 온몸에 퓨즈를 끄고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 때가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동굴에 숨어 지내보겠다 했지만 난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위로받을 수 없었기에 내게 말을 걸어주는 책에게 응답했다. 아무 말이나 썼다. 속상하다. 슬프다. 우울하다. 위로받고 싶다. 딱 감정 쓰레기통이 맞았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다 토해내다간 도망치면 어떻게 해? 몇 번이고 잃어버린 나의 친구들이 생각났기에 더 이상 그들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개개인은 각자의 삶에서 힘드니까. 힘든 하루를 버티는 그들에게 내 짐을 옮기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감정 쓰레기를 천천히 들춰보다가 '아니 근데 불편한 게 나쁜거야?' 억울했다. 억울한 감정을 가만히 둘 수 없었기에 자꾸 불편한 이야기를 썼다. 글을 읽으면 속상하고 마음이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서 좀처럼 내 글을 보여주는 게 쑥쓰러웠다. 딱 한 번 눈을 감고 용기를 냈다.


언제쯤 우량주가 될 수 있을까


꾸준하게 쓴다는 건 참 대단하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좋은 작가가 된다는 걸 쓰는 사람이 되면서 알게 됐다. 매일 강의를 할 때마다, 요즘 나와 비슷한 친구들에게 조언 같은 걸 할 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 칼 로저스


불편하다고 투덜대던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냈더니 내 글이 나왔고, 내 글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불편함도 듣고 싶어서 '불편함 감정 업사이클링'을 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본인의 삶에 자꾸 질문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조력자가 되어가고 있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분명 내게 큰 가치로 돌아왔다.


먹고 살겠다고 쓰는 일을 넘어서 기획을 하고 팀을 꾸려서 한 발씩 걸어나가고 있던 어느 날. 쓰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한 7월의 마지막 주 수요일. 2020년의 4분기를 시작할 수 있게 신발끈을 동여맨 그 날밤이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기분 좋을 얘기 하나 해 줄까? 오늘 강연 했는데 말이지."


한껏 업된 목소리로 아빠에게 전화했다. 체력이 바닥임에도 누군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 글을 보고 힘이 생긴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나의 본캐를 인지하게 만들었다. 못 쓰든 잘 쓰든 그냥 펜을 잡고 있는 힘껏 써 내려가보겠노라. 무언가 내 마음을 삼키는 순간이 있더라도 꾸역꾸역 써 내려가보겠노라고 다짐했던 그 날. 나를 나답게 해주는 건 결국 '쓰는 사람'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