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연대와 끈끈한 문화

코로나 이후에 문화는 어떻게 변화할까

by 허예지

문화와 예술은 같을까?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문화가 크고 거창하고 어렵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랬다. 대학생활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의 문화생활은 영화를 보는 것에 그쳤다. 가끔씩 여유가 있을 때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게 문화의 범주 정도? 지금과 같이 문화의 범주가 확장되는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게 사람들은 문화와 나의 연관성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나 자신이 문화 생산자가 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문화 생산자는 보다 특출 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문화를 만들만한 전문성이 없는데 내가 커뮤니티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 나의 역할을 재정립하는데도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문화에서 살고 있을까


무엇을 보다 '왜', '어떻게'가 더 중요한 시대

<맥락을 팔아라> 정지원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나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회사원 시절엔 '마케터'이자 '컨설턴트'와 같은 회사의 직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직함으로 나를 규정하기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는 느낌. 매일 연락을 받는다. "멘토님, 이게 뭐죠?" "이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능할까요?" 그리고 신기하게 내게도 멘토님이 있다. 그들과 내가 공통적으로 하는 물음은 딱 한 가지가 있다.


끝이 없는 왜라는 질문 안에서 포기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 일을 왜 하고 싶어요? 본인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죠?"

"어떤 결핍을 해소하고 싶은 거죠?


이제 무엇을 하느냐보다 '왜'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왔다. 내가 가진 의미가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의 문화도 자꾸 왜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고 있는 환경으로 진화하고 있다. 왜 해야 하는지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다. 느슨한 연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커뮤니티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 또한 우리의 문화가 될 수 있다.


질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돌아보면 내가 알고 있던 지식으로 해소되지 않을 때부터 궁금증이 시작된다. 내가 알던 것이 아닌 경우 호기심이 생기고 또 다른 탐구 대상이 생기는 것이다. 호기심이 시작되면 새로운 정보를 궁금해하고, 나와 연결된 것을 중심으로 이해와 통찰을 시도한다. 왜라는 질문은 나를 깨뜨리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고 다시 보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답을 도출할 수 있다.


문화의 개념은 '특정한 인간 집단이나 지역에서 특징적으로 나나 타는 생활양식'이다. 온라인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의 연대가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왜'에 대한 궁금증이 같은 사람들끼리 다른 연대를 만들어가며 느슨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를 어떻게 바꿨을까


코로나 이전 우리는 몸의 접촉을 중시했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모르는 사람과 프리허그를 하기도 하고, 악수는 처음 만난 사람과 격렬한 반가움의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몸의 접촉은 물론이거니와 마스크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마스크를 해 달라며' 불편함을 표출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회의 규칙이자 약속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오프라인으로 모이던 모든 모임들이 급속도로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근접한 곳에서 할 수 있는 호흡과 그들에게 공감해 줄 수 있는 비언어적 표현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과연 '내밀한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두려워졌다. 정서적 안정감 없이 과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두 겹으로 세 겹으로 우리는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코로나 이후, 우리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고 깊이 있는 사색을 하는 시간이 왔다. 감정을 직면하는 훈련을 해보지 않는 이상 나의 감정을 단순하게 좋고 나쁨으로, 불행과 행복으로 나누곤 한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왜 이런 상황에 도래했는지, 감정 속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알아야만 나의 감각과 가능성에 대해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쓰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내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 특히 온라인 플랫폼(브런치)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내 이야기에 특별하게 딴지를 거는 사람이 없다. 쓰는 게 좋은 이유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리된 생각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느슨한 연대지만 끈끈한 문화의 초기 모델일 수도


몸은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같은 문제의식을 도출했다. 심각한 환경문제 때문에 코로나라는 재앙 상황이 오게 됐음을 인지하게 되면서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육식이 문제가 됨을 인지한 사람들은 비건 활동으로 세계 환경을 지키다가 '함께' 비건 주의자로 모여서 행동하기도 하고, 환경에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쓰레기를 없애고 싶은 사람들은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만들었다. 이게 바로 새로운 문화의 태동이자 끈끈한 문화의 초기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수들이 만드는 것들은 그들의 머릿속으로 꼼꼼히 구상했던 것들이다


만드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Building is Thinking'

<디자인 유어 라이프> 빌 버넷


결국 내가 만드는 게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들었을 때 함께 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 스스로가 문화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문화 생산자의 조금 더 세분화된 개념으로 문화기획자라고 부른다. 문화생산자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획자는 문화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조직화할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기획은 실행하기 전과 실행하고 난 후가 크던 작던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 변화의 기준은 한 사람에게라도 가치가 있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초기 가치는 내가 정하고 만드는 것이 분명하지만 가치를 내재화하는 과정은 바로 기획을 맛본 사람들에게 있다.


'적우침주'(積羽沈舟)라는 말이 있다. 가벼운 깃털이 쌓이면 배를 가라 앉힐 수도 있다는 말로 사소한 것들은 쉽게 무시되곤 하지만 결국 모이고 쌓이면 큰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는 것. 급격한 변화 앞에서 나의 움직임이 작다고 생각할지라도 결국 나의 생각을 조직화하는 사람이 진짜 문화기획자가 된다는 사실. 그래서 모두가 문화기획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