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이라는 단어는 너무 생경하니까
두 번의 환승을 했다. 번거롭더라도 가까운 편이다. 내게 딱 한 시간 정도는 충분히 갈 만한 거리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기본 왕복 출퇴근 시간이 꼬박 네 시간이었던 걸 감안하면 고마운 일이다. 습관처럼 하루 전 지하철 어플을 켜고 몇 시쯤 출발해야 하는지 계산한다. 빡빡하게 이동시간을 잡으면 결국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어김없이 딱 그 시간이 늦었다. 종아리에 불끈 힘을 쥐고 두 칸씩 지하철 계단을 뛰어넘는다. 준비된 강의 자료를 보며 남은 시간 동안 한숨을 돌린다.
나다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나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나를 물어보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내 지금 상태를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 요즘 우리는 짜증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짜증은 완전히 다른 감정의 무늬를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이라고.
회사 다닐 때 유독 짜증 난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를 쓰고 말하고 듣는 직업을 가지면서 알게 됐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억울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한꺼번에 오니까 그걸 표출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던 거였다. 잠깐만 멈추는 게 뭐 그리 어려웠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는데 이제 알게 됐다. 이렇게 나만 알고 있기가 몸이 간지러웠던 게 틀림없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이뤄 낼 수 있을 거라고 호기롭게 걸어가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는 곳. 꿈꾸던 선택지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탓에 하나는 내 것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닿을 수 없는 서울.
손을 뻗으면 만져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얼마나 걸어가야 알 수 있을지 모를 때 결국 혼자 남겨진 나를 보며 말한다. “외롭다”
서울로 상경해 삶을 꾸려나가는 청년들 여덟과 딱 2주 동안 ‘상경과 혼자’에 대해 쓴다. 길지 않은 시간 내 역할은 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잘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퍼실리테이터에 그칠 뿐. 그저 생각의 단초를 던지는 역할에 머무르기에 그들에게 얻어오는 건 엄청나다. 몇 주간 안 쓰던 글을 쓰도록 도와주는 감정이 일어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서울로 올라와 내가 느꼈던 서울은 버거움. 수강생 B는 마스크 안에 옴싹 거리던 입술을 떼며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버. 거. 움.이라는 한 글자가 테이블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 던져졌다. 침묵이 쌓여 차가워진 분위기에 끼얹는 물. “저도요”
상경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생경하다. 사전적 정의는 지방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것이란다. 내가 살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온기가 사라진 차가운 온돌방 같은 것. 상경의 첫 느낌을 써 보자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 한 수강생의 왈칵 쏟아진 눈물로 결국 모두 무방비상태가 됐다. 홀로서기를 하고 호기롭게 이삿집을 가족들과 옮기고 나서 '잘 갔다 올게'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냈겠지만, 결국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온기로 서울에서 '외딴섬'이 된 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혼자가 버거워서 혼자를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기꺼이 내 발로 외로워지겠다고 선택할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그들 사이에 우뚝 서 있던 내가 200m에서 딱 100m 다섯 살 꼬마가 된 것 같았다. 한 발자국 건너갈 용기가 없었던 나와는 달리 또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내 앞에 있었다. 징검다리에서 딱 한 발만 뻗으면 되는데 차가운 물에 발이 닿으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것 마냥 뒤돌아 가만히 쳐다봤던 게.
나도 요즘 부쩍 외롭다. 아무것도 될 수 없고 그저 바라만 볼까 봐. 도처에 깔린 기회들을 놓아 버릴까 봐. 많은 일이 나를 짓누를 때 몇 해 전이었다면 친구들에게 토로했다. 상사가 일을 많이 줘서, 일이 너무 많아서, 아니면 내가 일 처리를 너무 엉망진창으로 한다고. 전과 달리 지금은 나 혼자 말하고 듣는다. 가끔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터져버리는 울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참고 침대에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한다. 잠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같았던 걸까. 짓누르는 압박감은 몽중인인 나도 울게 만들어버렸다.
서울증 치료를 시작하며 다시 나를 치료해보겠노라 다짐했다. 요리조리무경계커리어로 나를 쌓아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나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문뜩 스쳐 지나가는 어제를 묶어 내다 보면 나의 내일이 나오는 법이다. 지겹도록 같은 일상이 아닌 매일이 새로운 하루라 무계획 라이프를 살고 있는 내가 경계할 것은 외로움.
참여자들은 또 이런 말을 했다. 감정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끝도 없이 자극적이고 좋았다가도 혼자 집에 돌아오면 너무나도 외로운 도시. 중간이 없이 끝과 끝이 너무 버거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이런 압박감을 누구에게도 풀어낼 수가 없어서 결국 혼자 참다 보면 변비가 되기 마련이라고. 특별한 준비를 한 건 아니었다. 그냥 감정에 따른 나의 '상태'를 파악한 것뿐. 우리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 앞에 하나가 됐다.
수업 전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국 모든 감동은 참여자가 만든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시도를 응원하면서도 나도 그들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순간만큼은 매일 같이 새로운 오늘은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기대감과 조금은 다르더라도 도망치지 않겠노라고. 나도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또 다른 나의 혼자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