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인터뷰를 당하다

여성 창업가이자 프리랜서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by 허예지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승낙해놓고도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에게 다가갈 무게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스치듯 지나갔던 그들의 말이 내 말과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이 있었음을 삶 속에서 직접 체험했었던 나였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들의 인터뷰를 승낙했다. 하지만 바로 하지 못했다. 아니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서 두 번째 약속에는 열이 37도까지 올랐다. 우연인 듯 하지만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몸이 의도적으로 피한 것만 같았다. 인터뷰 내용은 커리어뿐만 아니라 성차별 관련된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용기를 냈다. 솔직하게 마주해보기로 했다.


생각했던 대로 좀 많이 버거웠다


사전 질문이 딱 세 장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양의 질문이라니. 말문이 턱 막혔다. 질문의 양보다 내용에 압도됐다. 솔직하게 말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길면 5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욕 잘하는 친구들처럼 욕 한 번 시원하게 해 주고 잊어버렸으면 좋겠지만 욕도 잘 못한다. 가끔 비슷한 질문이 와도 의도적으로 기억나지 않는 척했지만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 줄기 빛도 새어 나오지 않는 동굴을 향해 손전등 없이 오로지 내 눈으로 터벅터벅 질문지를 향해 걸어갔다.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그냥 읽는 게 이 정도인데 인터뷰가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그 날이 왔다. 전 날부터 기운이 나지 않아 여덟 시부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채 잠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모두 잊어버렸다. 결국 집에서도 늦장 부리다가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녀는 이미 내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내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던 그날, 나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을 이후에도 질문하더니 결국 내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4.16재단에서 만난 친구답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본인과 같은 친구들, 또래 친구들이 커리어 과정에서 성차별에 노출되는 걸 문제의식으로 도출해 솔루션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인터뷰였다. 커리어 내에서 성차별에 당해본 적 없는 대학생이 어떤 연유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해서 반대로 질문했다.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온 것 자체가 너무 대단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면접 상황에서도 대학교 내에서도 성차별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성급하게 판단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먼지차별'은 나도 처음 접해보는 용어였다. 먼지차별이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간접적이고 미묘한 차별로 즉, 특별히 의도하지 않고 악의도 없지만 당하는 피해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포함한 것이라고 한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영향이 없을지라도 여성 청년의 기저에서 커리어를 지속, 유지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장애물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과연 나는 계속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 어깨에 내 팔에 가까이 오는 상황을 참고 모면하고, 본인의 화를 마구 표출하고, 능력이 있지만 여성이므로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안 된다던 이야기까지. 먼지차별은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데 영향을 끼치지만 만연한 성차별(성폭력)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원래 참 긍정적이었다. 너무 밝고 사람을 잘 믿어서 바보 같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부터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프로불편러인 나는 회사 생활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예전에는 먼지차별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은 너무 공기처럼 당연했던 일이었기에 단어 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씩 내 몸을 갉아먹는 것도 모르고 버티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텨내고 싶었다. 그때는 혼자 버틸 수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손 내밀었다. 손 내밀면 누군가 한 명쯤은 잡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움을 줄만한 사람은 꼭 붙잡아주질 않았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의 고통을 말하는데 다 써버렸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에게 그다음에는 같은 팀 선배에게. 변하는 건 없었다. 참다가 부모님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팀장님께 말했다.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었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여전히 참아내야만 했다. 이렇듯 가해를 말하는 데는 정말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들의 용기 있음에 칭찬해주고 잘 들어주고 애썼다고 말해주는 걸 넘어서 행동할 수 있는 방안을 주는 것도 에너지 없는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자 팔이 뻐근해졌다. 한창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이 따끔거리던 그 상황이 왔다. 잠깐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해낸 나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지금 이렇게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충분하다고 온 마음으로 칭찬해줬다.


있는 그대로 나를 표현해주세요


인간관계가 중요했던 나는 여러 번 이직을 했고 끝에 프리랜서로 살게 됐다. 어디를 가든 한계는 있었다. 누군가는 도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차별이 부정당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처벌은 너무 가벼웠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좀 강화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변함없다. 왜 처벌당하는지 모르고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도보다 인식과 태도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다르고, 힘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방법 또한 다르다. 다름을 설명하고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성차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생활이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타당해진다면 성차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예민한 것 때문인지 누군가와 회의하면 쉽게 지치는 편이다. 그만큼 모든 요소에서 감정은 내게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만들고 해내고자 하는 코앤텍스트는 나의 마음(감정)에 꼭 집중해야 하고, 그 마음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알아가는 나의 맥락이 너무 중요한 커뮤니티다.


이런 내가 다시 회사에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그냥 이젠 그런 생각이다. 누구든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말이다. 확실하고 또박또박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그냥 삼켜버리면 사람들은 다들 괜찮은 줄 안다. 같이 마음을 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어디인지만 알면 나를 유지할 힘은 정말 충분할 것이라고 내 경험을 통해 자부한다. 이제 나의 필드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