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의식한다는 것은

by 허예지

코로나로 인해 잠깐 빨간불이었던 시간에서 4월이 되자마자 갑작스럽게 초록불이 켜졌다. 동시에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일이 생겨났다. 좀비처럼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기절하기를 딱 사흘. 면접관으로 보낸 마지막 날 저녁때는 아쉬운 마음을 토로할 길이 없어 전화기를 붙잡고 엄마와 동생에게 번갈아 전화를 걸었다.


"돌아보면 넌 참 대단한 것 같아."


대뜸 전화하자마자 동생에게 말을 건넸다. 여러 변화를 겪어 낸 그녀는 스스로 자꾸 도전하고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자국씩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나아가는 그녀. 아주 가끔은 언니라서 참아야 할 순간들이 왔을 때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위치에서 아주 값진 기회를 얻었다. 면접자가 아닌 면접관으로 심사 자리에 들어선 순간. 내가 받아들이는 공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시야가 트이게 됐다. 자리만 바뀐 것뿐인데 눈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을 판단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이따금 자기 검열이 심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기로 해 본다.


작년 이맘때 나도 그들과 똑같았던 것 같은데


내 삶도 분명 불안했다.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지속될수록 나에 대한 확신은 점점 사라졌다. 땅 속으로 꼬꾸라지는 나를 돌볼 새 없이 현실이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둥지 안에 있는 새가 아니라, 이제 내 날개의 힘으로 날아가야만 하는 새가 되었다. 내 둥지를 지었고 그 둥지 안에 나뭇가지를 채워 넣어야 했다. 내가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도록 나를 받아주는 하늘이 없었다. 도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laptop-820274_1920.jpg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땐 타자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결국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대학생활 내내 대외활동의 여신으로 불리던 그때로. 그렇게 할 만한 일들을 모으고 그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골라본다. 생각보다 글을 쓰고 싶은 내게 기회로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기회를 놓칠세라 키보드를 잡고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 본다.


그렇게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분명 프로젝트의 시작은 '내가 써 놓은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독립출판하겠노라'였다. 원고를 다 마무리한 난 그 원고의 내용을 낱낱이 전달했다. 불편을 견디다 못해 힘들어졌던 이십 대 중반의 한 여성은 결국 불편을 마주해보기로 결심했다. 모두 결국 그 이야기였다.


나 혼자보다 같이 해 보고 싶은데요


단 3개월. 그 기간 동안 책을 정리하고 퇴고하고 그리고 인디자인, 인쇄를 마무리해야 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던 와중에 내 마음은 분명 또 다른 욕구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저 글 쓰기만 할 수 없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누군가를 만나는 거였다고. 나를 주축으로 개인의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불편함 감정 업사이클링'을 시작했다. 조그마한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재되었던 불편함을 끄집어내어 서술해보는 작업. 내밀한 작업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글솜씨는 점점 성장해갔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발견하지 못했던 사회와의 접점을 만나게 됐다. 자연스러운 연결은 나를 또 다른 질문과 답으로 이끌었다.


지난 참가자에서 올해 면접관이 되다니


면접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지난해 참가자에서 올해는 운영자가 된 멘토 허예지입니다.' 눈이 휘둥그레 지는 사람, 박수를 치는 사람, 혹은 나를 아는 사람 등. 운 좋게 1기로 들어왔고 그리고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질문을 많이 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보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사람들은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건 시기의 문제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했고, 다른 사람들과 나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알기란 쉽지 않다. 매일 정면에서만 바라보고 옆면이나 뒷면은 바라볼 여유가 없다. 우연히 쳐다보는 시선은 당장 보이는 장면을 빠르게 잡아낼 뿐, 다른 경험을 하기에 너무 바쁜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의 대화를 통해 같은 상황에서도 여러 면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했다.


light-fixtures-4418926_1920.jpg 옆면도 좀 보고, 위에도 좀 보고.


의식(Conscious)의 뜻은 이렇다. 먼저 감정 또는 (누군가의 감각, 감정 등에 관한, 또는 외부 사물들에 관한) 지식을 가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었거나 현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거나 느낌, 또 스스로를 생각하는 존재로서 자각. 누군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왜 하고 있는 가를 앎.


불편함 감정 업사이클링과 <감정도 재활용이 되나요>를 통해 사람들이 의식하기를 바랐다. 크게는 내가 불편한 지점을 마주했을 때 의식하고 불편함에 정면으로 부딪힌다거나 혹은 너무 힘들다면 피할 수 있길.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불편함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활동을 하고 책을 썼다. 우리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나의 불편함을 넘어서 타인의 불편함을 의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내밀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 안에서 글은 더욱 성장했다. 이번에 참가자들과 함께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의식하는 시간이 되도록 자꾸 질문하고 생각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올해 마지막. 그들의 인생설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나를 다시금 의식하고 어떤 도전을 할 수 있을지 그들의 삶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