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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16. 2019

미소 짓는 연습을 해요

우울을 씁니다

 

미소는 자연스럽다. 귀엽고 오밀조밀한 아기가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면 짓는 미소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집에서 첫째 딸로 내 몫을 해낸다는 즐거움 때문에 입과 눈이 가까워지는 하회탈 웃음을 지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 대신 한쪽 입꼬리만 바싹 올라가는 썩소가 늘었다.


주량을 넘어서면 입꼬리가 중력에 저항하지 못한다


하고 싶지 않은 걸 억지로 하면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올 리 만무하다. 술 마시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술꾼이 될 거라는 선배들의 조언 아래 매일 내 주량 허용치를 넘어섰다. 알코올이 혈액을 파고들자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입꼬리가 중력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서 회식자리에서 우울하냐는 질문을 매일 들었다. 더욱 오버해서 술을 마시고 어깨를 들썩거려 본다. 그렇게 에너지를 다 소진하면 다음 날 오전 시간도 업무도 꼬인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인이 되어 서로 바쁘다며 만남을 미뤄 온 친구를 세 달쯤 지나 만났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지원서 쓰러 수시로 가던 카페로 향했다. 그 당시, 돈이 없어서 손바닥보다 작은 에그타르트 하나를 나눠 먹었지만, 그 날 우린 비싼 타르트를 여러 개 시켰다. 돈을 벌고 있다는 뿌듯함과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친구는 회사에 있는 재미난 선배 얘기를 해 줬다. 내 맞장구를 기대하다가 말을 멈추고 눈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 입으로 찬찬히 시선을 옮겼다. "너 입에서 경련 일어나고 있어."


억지 미소는 경련을 일으켰다


들켜버렸다. 미소 짓는 연습을 깜빡했다. 매일 퇴근길에 미소 짓는 연습을 했는데 주말이라 방심했던 것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금세 극복할 수 있다고 배웠다. 강박적으로 '힘들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며 살았다. 그리고 억지웃음으로 나의 솔직한 감정을 도려냈다. 칼로 도려낸 상처는 그대로 몸에 남아있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감정이 표정을 만드는 게 아닌 표정이 감정을 유도한다는 뜻이다. 미국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표정이 개개인의 감정을 좌우하며, 행동하는 대로 느끼게 된다는 '안면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k hypothesis)'를 주장했다.


과연 우린 행복하단 감정 없이 웃을 수 있을까? 감정과 표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최근 억지웃음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됌에 따라,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일례로 전화상담사나 판매원 같은 감정 노동자들에게 소비자들 역시 친절함과 미소를 강요할 수 없으며 그들의 권리 또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사회생활은 웃지 못할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런데도 아주 열심히 웃었다. 지금 보면 웃지 못할 상황에서 웃음기를 빼고 정색도 필요했다. 억지 미소를 짓는 건 오히려 상대방에게 오해를 샀고, 잘못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원인을 제공했다. 억지 미소로 인해 당연히 괜찮은 줄 알고 '한잔 더 마셔봐',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는 말을 하며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퇴근길 지하철, 미소 짓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저였을 겁니다


억지 미소를 짓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는 게 어려웠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입꼬리를 올리다 도저히 안 돼서 손으로 입을 찢는 사람을 보았다면 그게 바로 나다. 그렇게 가면 우울증은 점점 스며들고 있었다. 진정성 없는 웃음을 짓다가 좀 더 지나면 영구적으로 발작적인 미소를 짓게 되는 스마일 증후군에서 가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혹시 지금 미소 짓는 연습을 하고 있는가? 더 이상 연습하지 말자. 그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딱 한 번씩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보자. 처음이 어렵지 반복하면 이도 쉬워질 것이다. 만약 직장 상사가 무리한 부탁을 했다면 ‘제가 지금 선배님이 전에 주신 이 일을 어느 정도 끝내서요.’ 혹시라도 불합리한 상황이라면 웃음기만이라도 빼보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억지로 웃지 말자. 힘들면 그냥 표현하는 게 낫다. 오히려 그들은 ‘경련이 일어나는 내 입술’을 보며 더 걱정했다. 당시엔 그들이 걱정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우울감에 ‘허덕이는’ 나를 본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더 힘들어했다.


미소 대신에 새로운 표정이 뭐가 있는지도 좀 살펴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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