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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22. 2021

어리니까, 여자니까, 뚱뚱하니까

자연스러운 선입견의 말

분명 월요일 낮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가는 사람은 끝이 없었다. 한 대, 또 한 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글쎄. 우리처럼 자영업자인가?' '물론 사장님도 있겠지만, 직장인도 있겠지.' 자전거 동호회를 다녔던 남편이 대답했다. 알고 보니 영업사원이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설명해준다.

 

선입견의 말은 자연스럽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선입견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이다. 살이 쪄서 스트레스를 받겠다는 둥. 아니면 여자라서 밤길 다니기 어렵겠다는 둥. 특히 어린 나이에 연단에 서서 강의를 하게 되면 받는 부담의 시선 역시 견딜 수 없었다. '젊은 애가 뭘 알겠어'라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탓에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던진 선입견의 말을 곱씹어봤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뭘 알기나 하겠어. 돌을 맞아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또 다른 돌을 던지는 나의 모습에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직 너는 어리니까


30대 중반의 이준석 위원이 국민의 힘 당대표로 당선됐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이준석 위원의 당선을 처음에는 확신하지 않았다. 4선, 5선 수 십 년의 본인들의 정치 경력에 비해 너무나 어린 위원의 당선이 부담스럽다는 사실과 더불어 '뭘 몰라서'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던 대다수의 의원들은 사면초가가 됐다. 한 토론 방송을 함께 하던 박종진 의원은 기자의 인터뷰에 "종석이가 당대표가 되었는데"라는 말과 함께 "내가 종석이가 된다는 생각도 못하고, 63 빌딩을 엎고 올라가겠다'고 말했다며 나이 어린 당대표를 향해 선입견의 뉘앙스를 풍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대학생일 당시, 정치는 결국 연륜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정치든, 운동이든, 공부든, 그 무엇이든 끈기와 열정 그리고 몰입의 힘이 있는 사람들이 연륜을 이기는 경우를 여러 번 발견했다. 최근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개개인의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 사업의 멘토로 작업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초반의 여대생은 영화를 통해 사회문제를 곱씹어 보고 싶었기에 목표를 잡고 그에 따라 충분한 설득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완벽한 계획표를 만들었다. 반면에, 30대 후반의 한 남성은 결과물에만 몰두한 나머지 나의 동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단순한 흐름만을 서술했다.


청와대 역시 오늘 파격적인 임명을 발표했다. 25세 대학생을 청년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청년의 입장에서 청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현 정권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 탓일 수도 있지만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린 나이의 청소년들에게도 존댓말을 하고, 나이를 소개하지 않으며 평등한 문화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어린 나이 그리고 나와는 다른 성에 대한 선입견의 기운을 주고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여자이기도 하니까


나이의 선입견뿐만 아니라 여성이기에 받는 선입견 또한 산재해 있다. 지난 한 포럼 참여자일 때도 느꼈다. 반대편 주 발제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리고 나는 토론 참여자로 앉아있었다. 내 곁에는 모두 2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다. 우연이 었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분과의 저녁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충분한 여성 발제자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알고 보니 2019년 기준 국내 대학 전체 전임교원 중 남성은 75%로 여성의 약 3배다.


오늘 전화를 받고 머리가 무거웠다. 한 문장이 나를 자꾸 찔렀다. "제가 정치권에 있는데, 대표성을 지닌 남성 청년은 있는데. 여성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추천을 받았어요." 분명 그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리라. 분명 전 국민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뚱뚱한데 괜찮겠어


날씬한 사람들만 비키니를 입어야 예쁘다는 선입견에 대항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는 이렇게 말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행복도 불행도 내 선택에 달렸다는 걸요. (생략) 나는 외모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중앙일보, 2016.06.30)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입견은 존재한다. 그리고 선입견의 대상이 선입견을 깨는 데는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녀를 향한 날 선 댓글과 나이 어린 정치인을 보는 어른들의 시선 역시 여전하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나를 칭하는 단어는 '타자'의 시선일 뿐.


김지양 씨의 인터뷰처럼 "인생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임을. 세상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해도, 그리고 아직 안 된다고 말할지라도 나의 고유함을 인정하길. 그리고 그 고유함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오직 나 임을 이해하기를. 어떤 선입견에도 맞설 수 있는 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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