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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Jun 24. 2021

관계 디톡스가 필요하다고요

잘 지내고 있지 내 친구들

오랜 친구라고 생각했던 친구와 멀어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사실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서둘러 준비했다. 그날은 갑작스레 강연이 잡힌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 프리랜서에게 들어온 강의를 거절할 여력이 없었다. 또 다른 의미로 벌써 두 번이나 친구와의 약속 시간을 미루고, 취소한 나에게 변명도 필요 없었다. 이미 친구는 나에게 실망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연락을 끊었다.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를 에둘러 말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바빴고, 하반기에 모든 일이 몰려 있는 나에게 주어진 여유는 밥 먹을 시간뿐이었으므로. 운전을 하지 못했던 터라 대중교통을 타러 움직이며 소화했다.


프리랜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프리랜서 3개월 차. 여유로운 프리랜서인 만큼 회사에 얽매여 있는 친구들을 내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저녁 그들의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함께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밤새 일을 하는 게 반복됐다. 어느 순간부터 망가진 내 몸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이래야 하지?"


그렇다고 해서 그들처럼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일할 수는 없었다. 프리랜서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공유하고, 이들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하는 프리랜서의 시간은 저녁 여섯 시부터 시작된다. 글 쓰기 수업, 북 토크, 문화활동 같은 것들은 항상 늦어도 일곱 시 반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게 부담스럽다. 사실 나라고 안 보고 싶을까. 마음을 툭 털어놓고 깔깔대며 수다도 떨고 싶고. 어떻게 지내나 안부도 묻고 싶다. 그럴만한 여력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미안하고, 기약 없는 약속을 또 한다는 것도 나에겐 큰 스트레스다. 삶의 패턴을 아는 프리랜서이자 기획자 친구들과 오히려 더 자주 마주치고, 대화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 해가 지날수록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의 생명을 경험한다. 예전에는 나의 잘못으로 탓을 돌렸다면 지금은 나의 경험치가 달라졌기에 이를 받아들인다. 점점 능동적이라기보다 관계에 관조적으로 변한 편도 있어서 '이게 맞을까'라는 걱정도 가끔은 머릿속에 둥둥 떠다닐 때가 많다.


어찌보면 우리의 인생에 한 번쯤 마주했던 위기의 관계


오늘 이십대 중반이 된 동생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또 다른 경험을 쌓아가며 하루를 쪼개 사는 동생이었다. 그녀는 지치는 관계를 계속 지속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단다. 지난 오랜 시간들이 무색해지게 너무 속상하다며 말이다. 나의 성장을 위해 일을 위해 바삐 나아가는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설명하기 너무 어렵다고. 그냥 그렇게 말했다. "지나가는 관계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줄 수가 없더라."


모두가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가치관이 다른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경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질문이 꼬리를 묻다가 결국 돌아오는 한 마디. "그런데 꼭 이 질문이 필요할까?" 상대방이 생각하는 게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나와 다를 뿐인데. 그런데 그 다름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장벽이 깨뜨리는 방법을 또 다른 친구도 고민하고 있었다.


최근에 급속도로 가까워진 친구가 "관계 디톡스가 필요해" 나는 그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나의 가치관을 의심하면서 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우리가 살아온 상황, 경험했던 일,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다르기에 우리가 가진 망치의 단단함은 다 다르다. 엄청 무른 나의 도끼와는 달리 같은 상황에서 살짝 쳐내도 부서지는 망치를 가진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나의 가치관의 옳고 그름을 타인을 통해 판단할 수 있겠냐고.


그저 나에게 잘 맞는 정답을 찾아가면 되는거야


나 역시 스무 살 중반까지만 해도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겠노라 이를 악 물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매일 눈치를 보느라 모든 에너지가 바닥났다. 심지어 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서운하게 했으면 집에 와서 다시 연락하거나, 사과하던 습관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면서까지 일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가끔 나를 휘감으면 죄책감으로 카카오톡을 다시 켠다. 아니면 전화 수신 버튼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는 무슨 안부를 묻는게 좋을지 고민한다. 그렇게 한 두시간이 훌쩍 지나고 연락 조차 하지 못할때가 많다.



이젠 그럴만한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다. 나 자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는데 나 자신을 돌볼 여력도 없다. 요즘에는 매일 저녁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이렇게나 행복한 걸 보면 말이다.


자주 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도전해보겠냐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친구들을 안다. 나도 그들이 너무 보고 싶다. 오늘도 궁금하다. 잘 살고 있냐고, 힘들진 않냐고 안부를 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기다리는 편이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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