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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pr 26. 2022

버리지 못한 옷, 그리고 마음

이제야 봄 옷을 꺼내 보았다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내 마음은 집을 떠나 있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집에 들어와 단 한순간도 편치 않았던 마음. 침대에 누웠을 때, 화장실에 갈 때, 심지어 설거지를 할 때도 집은 너무 생경했다.


봄이 되었음에도 매일 니트를 입었다. 나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내게 이제 여름옷을 꺼낼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내가 도무지 여름옷을 살필 기미가 없자 집에 오자마자 옷방의 불을 켰다. 쌓여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뒤죽박죽 놓여있던 옷을 하나하나 개어두었다. 그때, 멀리 떠나 있던 나의 마음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옷이 이렇게나 많았나


매일 퇴근하고 거실 불을 켰다. 분명 불을 켰는데 깜깜했다. 담담하게 거실을 둘러보는데 어떤 물건도 내 것인 것 같지 않았다. 이 물건을 어디에 썼더라. 내가 자주 쓰던 노트가 뭐였지. 익숙하지 않은 촉감 때문일까 자주 하던 일상의 행위들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입을 옷보다 버릴 옷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매트리스 아래에 여름옷이 모여 있었다. 옷이 이렇게 많았나. 작년에 입었던 옷은 몇 벌 안 되는 것 같은데. 입지 못한 옷들은 죄다 꽃무늬였다. 하얀 블라우스에 붉은색 꽃이 박혀 얼굴색을 한층 밝게 해 주는 옷, 팔 쪽에 프릴이 부각되어 움직일 때마다 하늘하늘 거리는 옷까지. 과거의 내가 꽤나 열정적으로 입었던 옷들이었는데. 지금은 괜히 아는 사람이 이 옷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을까 봐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난 비웃음 살만한 옷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그래. 막상 입으려고 찾아보면 옷을 버려서 아쉬워했던 적이 있었다. 입을 용기조차 없으면서 옷을 버리는 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분명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입을 용기와 버리는 용기


입을 용기만큼이나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익숙했던 내 옷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 한 벌을 버리려 할 때마다 그 옷을 입었을 때 함께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분명 안녕 인사하는 건 나 자신인데 왜 만났던 누군가에게 인사하는 기분이 드는 건지.


분리수거하러 갈 때마다 놀라웠다. 버려진 옷과 신발로 인해 옷 수거함은 출근길 지하철이었다. 충분히 헤져 있어 재수명을 다한 한 벌의 가죽 재킷이 내 눈길을 끌었다. 혹시 작가였을까. 오른쪽 팔목 부분만 유달리 갈라져 있었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었을까.


과연 쌓아둔 옷을 버릴 수 있을까.


작별을 고할 겨울, 여름, 몇 벌의 옷을 추렸다. 그리고 현관 앞에 쌓아두었다. 출퇴근 길 매일 인사를 나누며 '이제 정말 보내줘도 될까.'라고 마음으로 묻는다. 아직도 아닌 것 같다. 봉투 안에 들어있는 옷을 내 손으로 들고 보내줄 수 있을까.


다시 집으로 나의 마음을 돌려놓기까지


마음은 분명 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의 뜻은 무엇이었나. 사전을 펼쳐보았다. 마음은 아래와 같은 뜻을 지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또,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올해 3개월.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일으키는 작용이 참 많았다. 나를 일으키는 중심부가 애석하게도 쉽게 녹아내렸다. 일상을 부유했다는 말이 맞을까.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나를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3주에 한 번,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간다. 그때마다 나는 처음 마주하는 그녀의 표정을 본다. 그리고 진심을 듣는다. 그녀의 표면적 진심. 깊숙이 박혀있는 중심은 모두 다 나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임에도 최선을 다해서 딸에게 표면에 붙은 진심을 조금씩 떼어낸다. 혼자 걱정할 딸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녀는 노력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엄마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엄마는 더 아팠겠지.


작별을 고해야 할 나의 마음을 어찌할 줄 몰라 꼭 쥐고 있었다. 병실에서 가만히 엄마의 조각난 진심을 듣다가 부유하고 있던 나의 중심을 드러냈다. 울음소리가 새어 나갔다. "힘들다." 울고 있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남편의 할아버지가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하늘로 갔다. 그때의 나는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았다. 모든 가족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릴 적 시간을 나눌 때, 나도 함께 있었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전, 남편의 형은 어릴 적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따라다니며 찍어두었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두었다. 어릴 적 그들의 모습을 나누며 괜히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아 알은체를 했다.


외롭지 않았다고 해서 괜찮았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나는 작별이 미숙한 사람이었음을 알고 있다. 10년째 가지고 있는 나의 옷. 그 안에 있었던 추억이 나를 그 자리로 돌려놓는다. 엄마 앞에서 운 그날. 어쩌면 내 마음은 버리지 못한 여름옷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지 않아도 곁에 있지 않아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던 그 옷의 온기처럼 그렇게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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