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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Aug 24. 2022

옹졸한 나, 인정한다고 그래

너무 속이 좁아서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나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옹졸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그 말을 혹시 남편에게 들어봤는지? 여느 때와 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여름 오후.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날아온 한 마디는 얼마나 센 찬 바람이었는지 머리가 띵 저려왔다.


옹졸하다는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감이 모든 걸 말해주듯 말이다. 속 좁다는 단어보다 더 마음이 좁은 사람으로 유치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내가 옹졸하다니. 


옹졸한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한다


먼저 옹졸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시야의 변화다. 일상적으로 생활할 때를 생각해보자. 갑자기 시야가 좁아질 때, 자연스레 마음까지 답답해진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적어짐으로써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내가 가는 방향으로만 집중하다 보면 생각까지 좁아지게 만든다. 시야를 가리도록 눈에 먼지가 낀 것 같았다.


일하던 상대와 함께 대화를 했다. 그 때 이야기 했던 건 아래와 같다. 지금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 등등. 뒤이어 이런 교육을 들으면 좋겠다는 추천의 말까지. 당시에 어떠한 대꾸도 없이 가만히 들었다. 묵묵히 일하고 집에 오는 길. 남편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에둘러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내가 그 교육까지 들어야 해? 나 이미 다 몇 해를 걸쳐서 지나온 일 같은데."

"그분은 그냥 좋은 마음에서 이야기한 거 아냐? 뻔히 의도 알잖아."


양쪽 귀가 빨갛게 타 오른 걸 볼세라 창 밖을 바라본다. 어떤 의도 없이 그저 좋은 뜻으로 추천한 것일 일 텐데. 좋은 의도는 다 없어지고 내 좁은 마음을 진열대에 올려놓은 기분. 옹졸한 사람은 이렇게 상대방의 호의에 욱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좁은 통로를 지나가면 얼마나 불편한지


옹졸한 마음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켠다. 그리고는 염탐을 시작한다. 내가 생각했던 일을 시도했을 때는 괜스레 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억울하다. 생각했을 때 왜 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모든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지만 나인 것 같지가 않다. 결국 내가 아닌 네가 주인공이 되는 것만 같아서. 그게 두려운 것이다. 주인공은 나 자신인데 내 자리를 뺏어가는 주변 사람들 탓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놓친다. 그렇게 비교하다 보면 정작 나에게 집중할 시간은 사라진다. 좁아진 시야만큼, 그 시야를 모두 남에게 빼앗긴다. 게다가 먼지 낀 시야로 타인을 바라보니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였을까?



마음의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내 마음에 끼어 있는 불순물을 닦아내는 작업이 시급하다.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바닥을 닦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의식을 시도해 봤다. 일단 일기를 썼다. 한 글자씩 쓰면서도 아직 때가 불어나고 있다는 것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산책을 나가본다. 산책을 하면 내 속도를 알게 되고, 좁았던 시야가 갑자기 넓어졌다.


'인생은 구슬 목걸이처럼 꿰인 각양각색 기분 연속이며, 하나하나 겪어보면 그 기분들이 각자의 색깔로 세상을 물들이는 컬러렌즈라는 걸 알 수 있다.'는 시인 랠프 월도 애머슨의 말처럼, 감정이 나의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옹졸함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옹졸함이 발단이 된 건 혼자 필드에 나와서부터 였다. 모든 성과가 나의 시도로부터 보이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더더욱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작은 실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켜켜이 쌓아가는 그들의 노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휴식하면서 멈췄던 시간


바쁘게 움직이던 시간을 잠깐 멈췄다. 한 주동안 모든 일을 멈추고 휴가를 다녀왔다. 물론 오는 전화를 다 마다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동안 만이라도 나의 마음에 집중하고 싶었다. 일렁이는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기에는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옹졸한 마음을 멈추는 데는 특효약이었다.


한 주동안 옹졸한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나 자신과 대화해보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일상의 항상성.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었다.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통제감이 커지면 자신감이 커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의사결정 능력이 상승한다고 말이다.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만, 사건 사고 안에서도 나 스스로 나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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