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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29. 2021

오른 팔목이 나갔다

집 나간 팔목을 찾습니다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한쪽 턱을 괴고 창 밖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돌리면 재미있는 광경을 많이 발견한다. 다정히 손 잡고 걸어가는 연인. 혹여나 놓칠까 작은 손을 부여잡고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엄마와 아이. 형체 없었던 나의 마음이 뭔가 잡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면 글을 쓰고 싶어 진다.


팔목이 심하게 아프기 전, 특별하게 원고가 밀려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단지 그냥 마음이 너무 바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산더미인데 한 자도 써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 분명 그 이틀은 쓸모없거나 가치 없는 날 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섬으로 들어가기 전날 밤과 전전날 밤은 나오지 않는 단어를 붙잡으며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이틀


일 때문에 외딴섬으로 들어간 그날. 연필도 컴퓨터도 내려놓은 채 도로를 걸었다. 인도도 없고 간판도 없는 그 거리를 걸을 때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자 지금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가만히 쳐다봤다. 생경한 광경 앞에서 접해본 적 없는 감정을 어찌할지 모르다가 마음을 흘러내려본다. 글감을 놓칠까 봐 내 감정을 완벽하게 잡아두려 노력하던 나를 버려두고 그냥 서 있었다.


내 눈앞에 쌓여 있는 일을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강박 때문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순간만 피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글을 향한 마음도 멀어지고 생각의 깊이도 한 없이 얕아졌다. 더 중요한 건 나의 감정을 돌보는 게 유독 어려워졌다.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짜증이 잦아진 나를 발견했다. '뭐부터 해야 하지?'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숨 가쁜 하루가 반복되면서 하루하루 나의 상태를 묻지 않는 나날이 반복됐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이틀이 아닌 아무것도 쓰지 않았던 5개월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나가는 열차와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분명 내 마음은 충분했는데. 마음을 돌볼 새 없이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둘러싸여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연습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글 쓰자고 만들었던 나의 공간의 효용가치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필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필사. 가장 느린 독서법으로 불리기도 하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잡념을 없앨 수 있는 쉬운 방법인 필사를 시작했다. 어쩌면 아주 느리게 내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사가 아닐까 싶었다. 박상영의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 그는 '나는 그녀의 집요한 필사가 구도자의 고행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어쩌면 필사는 삶의 이유이자 호흡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거부하던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일 수 있겠다. 매일 같이 반복하는 호흡의 소중함을 모르던 나에게 필사는 호흡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나는 쓴다. 느리게.


https://www.instagram.com/slow_write_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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