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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Feb 17. 2023

기대했던 결혼생활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때는 지난주 토요일. 큰 외숙모가 내게 물었다.


- 예지. 너네 만난 지 얼마나 됐지?

- 어, 얼마나 됐냐. 2007년부터 만났죠. 아마.

- 그럼 17년 정도 된 거네.


옆 자리에 있던 친척 동생은 맥주 캔을 들어 올리며 '화이팅'이라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지금까지 산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그와 함께 했다. 그저 눈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는 우리는 결혼 5년 차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2월 16일에 결혼했다. 그때 결혼을 한 이유는 딱 한 가지.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2월 18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웨딩 및 첫 만남 데이'라는 명목하게 거하게 여행을 떠나자는 게 우리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기대와 다르지 않은가. 매해 2월에는 왜 이렇게 많은 일이 생기는지. 재작년에는 오프라인 가게 공사를 하고 오픈 준비를 하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작년에는 시할아버님이 먼 곳으로 떠나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그냥 말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분주해졌다.


네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며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보고 싶었다.


결혼과 연애는 정말 다르다


오래 만났으니까 결혼 생활은 더 편할 거라는 주위 말은 다 거짓이었다. 연애와 결혼은 완벽하게 달랐다. 더러 "여자친구가 집에 놀러 왔는데 집에 안 가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말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자면.


연애할 때는 데이트 가기 전 준비 시간이 평균 한 시간 정도 소요됐다. 그 시간만큼 상대를 만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준비 시간이 곧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이다. 오늘은 어디를 갈지. 어떤 말을 나눌지. 뭘 먹을지 차근차근 생각해 보고 계획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일어나자마자 서로를 바라본다. 헝클어진 머리, 양쪽에 낀 눈곱. 씻지 않은 모습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다. 그렇게 눅진한 생활의 세계로 들어간다. 일어나서 서로를 바로 바라보는데 '준비 동작'이 어디 있어.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는 게 쉽지 않다.


로맨틱과는 꽤 거리가 멀었던 아침 기상 시간.


우린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결혼하고 나서 맞춰가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매일 울면서 밤을 지새우고, 속상하다고 엄마에게 고자질(?)도 했다. 병준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했던 단 한 가지의 상황이 있다.


- 병준이네 집에서는 나만 이야기한다. 아버님의 격한 호응이 있을 뿐.

* 요즘에는 모두가 이야기꾼이 되었다. 물론 한 사람씩 대화를 진행하고.

- 우리 집에서는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친다. 병준이는 어디에 호응해야 할지 어렵다고 했다.

* 이제는 때에 따라 잘 대답한다. 방청객이 되었다.


그만큼 어떤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또한 다르다. 모든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하는 나에 반해 신중한 병준이는 한 단어가 나올 때까지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병준이의 생각을 기다리는 게 정말 답답했다.


괜찮아.


다름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참 많았다. 휴지 꽂아두기, 치약 짜기, 설거지 등등. 처음에는 용납할 수 없었다. 나와 병준이는 서로가 '틀리다.'라고 말했다. 삶은 수학공식이 아닌데 우리의 관계를 수학공식처럼 정리하려 들었고 엄청난 폭발음이 발생했다.


쟤 진짜 왜 저래. 이 문장이 서로의 디폴트 문장이었다.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가 안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접속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불가피하게 써야 하는 상황이 딱 지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 뒤에 따라붙는 말. '병준이랑 꼭 같이 와야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말을 대신 따라 하기도 한다. 좋은 곳에 가면 꼭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어제자 결혼기념일.


어제 병준이에게 물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의 만족도가 몇 점인지. 그는 7점이란다. 나는 8점. 덧붙여하는 말이 작년에는 3점이었단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집중할 시간이 없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요즘엔 '내가 병준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린 같은 상황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떤 생각으로 행동하는지 모르는데 왈칵 내 감정을 쏟아내게 되면 불편할 상대방의 모습을 이제야 상상한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튼튼한 이유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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