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예지 Jun 18. 2019

지난날 우리의 반성문

<피구왕 서영>을 읽고

나는 까무잡잡한 얼굴을 가졌다. 피부가 새까매진 이유는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운동장에 남아있던 아이. 그게 나다. 피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냅다 뛰어간다. 그리고 피구를 시작했다. 피구를 하다 보면 잘 피하는 친구 그리고 잘 잡는 친구가 있다. 아니면 숨어 있는 친구도 있고. 피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나뉘었다.


<피구왕 서영>은 내 가슴팍으로 세게 공을 내리꽂았다. 과연 그녀는 진짜 피구왕일까. 그 시절 피구를 할 때처럼 전투적으로 책을 들고 읽어 내려갔다. 기대와는 달리 서영이는 진짜 피구왕은 아니다. 타인이 그녀에게 별명을 지어준 것이었다. 서영이는 뿌리 없이 바람에 떠도는 홀씨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그룹 안에서 자신의 가치가 부여된 서영이는 그렇게 피구왕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서영은 항상 전학과 동시에 '존재감 없는' '내성적인' 친구를 찾는다. 그렇게 짝꿍이 된 윤정에게 친하게 인사하며 접근했던 서영 앞을 다른 친구들이 막아선다. 교실 안의 서열을 파악한 서영은 윤정과 서서히 멀어졌고, 현지는 그런 서영에게 접근했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완벽한 현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기준이 되는 아이였다.


윤정은 달랐다. 공부는 그저 그렇고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다만, 자신의 주관은 확실한 아이였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리다가 확실한. 현지에게 반대 의견을 낸 이후 그렇게 반에서 왕따가 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윤정을 경계했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것에 민감하다. 어릴 때부터 보통의 모습과 다른 아이가 눈에 띄면 일단 경계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집단에서 희생양으로 삼을 이유가 되고, 교실의 질서가 유지되는 데는 항상 희생양이 한 명쯤은 필요했다.


서영이의 이중생활은 시작됐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열심히 피구를 하던 어느 날, 윤정을 만난다. 윤정이 역시 피구 연습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하나둘씩 털어놓기에 이른다. 편안하고 따뜻한 윤정에게 심적으로 끌리지만 교실에선 어쩔 수 없이 현지라는 안전장치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서영. 서영의 그런 선택을 과연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서영에게 현지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울타리를 공고하게 해주는 안전장치였고, 윤정은 울타리 너머로 서영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현지 옆에 있으면 편한 점이 많았다. 윤정과 데면데면한 척하는 자신의 위선적인 모습이 싫기도 했지만, 유현지라는 강한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은 그런 생각을 금방 날려버렸다.


서영이는 위선적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기꺼이 울타리를 공고하게 해 주겠다고 다가오는 안전장치를 마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토록 험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상처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래도 윤정이라면 서영이의 진심을 알아줄 만한 친구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많은 이야기책의 결말은 착한 사람이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았지만, 교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도 학교에 다녔으면 왜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것일까. 집에서는 착하면 상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하고 모호한 말로 인성교육을 끝내버리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지만, 막상 교실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집에서 배운 것은 다 잊고 다시 배워야 한다.

뭐 아이들만 그럴까. 어른들의 세계도 마찬가지인걸. 교실에서 그 모호한 인성교육으로 길러진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른다. 겉과 속이 달라고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렇지 않다는 우리의 교육. 책에선 매번 이상적인 결말을 그리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것을.


그렇게 서영이는 교실 안에서 세상의 가혹함을 배웠고, 변함없는 윤정을 통해 성장한다. 공고히 지켜주던 울타리가 어느새 사라지고 서영이는 자신과 윤정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을 택했다.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공고한 울타리를 떠난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용기임을 서영이는 알고 있을까.


<피구왕 서영> 안에는 4 작품을 더 볼 수 있다. 작가는 알면서 모르는 척, 괜찮은 척하며 어떻게든 안전하게만 넘어가려 했던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마음을 담아서 글을 썼다고. 이렇게 작은 움직임이 시작될 때마다 어찌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서영이 덕에 펜을 들고 지난날 나를 위해 위로하고 반성했다. 가혹하고 혹독하게 몰아세운 나 자신과 손잡고 같이 갈 때인 듯싶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