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상적인 하루, 발리2019

by 도연


오늘은 뭘 할까?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내일은 뭐 하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또 그 루틴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조차도 일상을 살아내는 데에 의지가 된다. 스스로 정한 규칙들을 매일 이행함으로써 얻는 기쁨이 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것 같은 아주 평범한 것들 말이다. 자신만의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요즘 이틀에 한번 꼴로 운동을 가고, 하루에 한 시간은 예능이나 유튜브를 보고, 그리고 30분 이상 독서를 한다. 잠들기 전에는 영화를 한편 정도 보는 편이며, 6시부터 9시까지. 그러니까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정은채의 영화음악을 하는 시간에는 대부분 일을 한다.

예전에는 주로 이런 평범한, 일상과 거리가 가까운 여행을 많이 해보질 않아서 여행에서 일상의 루틴을 연결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박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거나 사막에서 캠핑을 하거나, 뭐 그런 류의 여행을 선호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최근 일상적인 여행을 하면서 여행 속에서도 일상 속 규칙들을 지켜내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아침에는 꼭 모닝커피를 마셔요


아침에 눈을 뜨면 서너 시간 동안 곡식을 입에 넣지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배고파! 하는 사람이 제일 신기하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물을 한 모금쯤 마신 다음 담배를 피우고 컴퓨터 앞에 앉거나 전날 먹은 설거지를 하거나 한다. 그런 다음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틀고 또 인터넷을 한다. 특별히 하는 건 없다. 쇼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으로 사람들을 탐방하지도 않는다. 요즘은 더더욱 뉴스도 잘 챙겨 보질 않는다. 블로그 이웃들의 글이나 브런치 메인 글을 가끔 보는 정도. 발리에 오는 길은 길고 험난하여(20시간 경유에 우붓으로 오는 길까지) 제때 잠을 자지도 못했고 제때 식사를 챙기지도 못했는데 우붓의 첫날 드디어 일상을 시작했다.

오전 10시. 아침은 잘 먹지 않지만 호스트가 챙겨주는 팬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었다. 초록색의 나무에 핀 예쁜 꽃들이 만개한 정원을 보면서 아침을 먹고 있노라니 어쩐지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 들어 꽤 흡족한 아침을 보냈다.




오늘의 하루는 한식을 먹기로 결정했다. 집에서 출발해서부터 오늘까지 이틀째 한식을 못 먹었기 때문에 식도를 강타하는 매운맛이 간절하다. 검색을 해보니 우붓에서 꽤 괜찮다는 한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수집하고 구글 맵으로 거리를 확인하니 4km쯤 되었다. 걸어서 1시간 거리. 평소에 걷기를 좋아하니 무리 없이 걷겠다 싶어 조식을 먹고, 여느 때처럼 카톡으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일을 조금 하고 한식당으로 출발할 채비를 했다. 설렌다.. 김치찌개 먹어야지.. 베리 스파이시하게 플리즈 :)









디지털 노매드 하러 왔어요


사실 이번 휴가는 나에게 무리수였다. 첫 번째 이야기에도 말했지만 돈이 없다. 아니,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 계약해놓은 실용서를 끝내야지만 고료를 받을 수 있고, 지금 이 원고의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통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 요즘 많이들 디지털 노매드를 한다고 하는데 "아 싸가 되고 싶은 인싸"인 나는 디지털 노매드 정도는 해봐야 되지 않겠냐고 자주 생각한다.(실제로 나는 스스로를 은근히 힙스터를 동경하는 평범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직업상 어디든 떠돌며 일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가졌으므로 노트북을 챙겨 친구들과 조우하기 전까지 열심히 교재 원고 작업을 어떻게든 절반이라도 끝내 볼 심산이었다. 숙소의 테이블이 벽을 보고 있는 구조라 슬쩍 창가로 책상을 옮겼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업무 환경이 만들어졌다. 모니터를 보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바로 고개를 들어 초록색 나무로 안구를 정화할 수 있는 아름다운 책상 환경. 많은 창작자들이 그런 말을 했지. 환경을 핑계 대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너무 많은 책에서 이런 말을 읽었기 때문에 어떤 작가가 어떤 책에서 언급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이 많은 창작자들이 체득한 이 진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진도가 안 나간다. 내 방 책상 위에서 일이 훨씬 더 잘 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김치찌개를 향한 열정


발리 우붓은 전통 가옥이나 나무, 개천이 아주 아름답다. 강원도 삼척 정도쯤 가면 이런 시골 풍경은 많이 볼 수 있지만 어딘가 이국적이긴 하다. 풍경도 풍경인데, 금세 도착할 줄 알았던 4km는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생각보다 꽤나 많은 땀을 흘리게 했다. 일단 김치찌개를 먹어야겠다 너무 허기가 진다...

걷는 동안 약 30명 정도가 택시 호객을 한다. 뭐 그렇다고 불쾌할 정도로 다가오는 건 아니고 앉아서 TEXI 란 종이를 보여주며 택시?라고 하면 No Thanks~하면 바로 웃으면서 보내준다. 간혹 택시 호객이 아닌데도 웃으면서 하이~헬로~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발리 사람들은 왜 모두가 미소 짓고 있는 거지?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지만 태국, 필리핀, 이번 인도네시아까지 사람들이 참 많이 웃는다. 기본적으로 밝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라고 편견을 가지곤 하지만 그런 게 아닐 때도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오히려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일수록 딱딱하다. 철저한 개인주의 때문일까? 개인적이기 때문에 개인이 살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겠지만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지방을 가거나, 새벽시간에 서울역에 내리거나 할 때, 우리나라의 택시 기사님들이 호객을 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인천? 부평? 반말을 하면서 다가오는 것도 기본이고 어쩐지 좀 무섭기도 한데, 뭐가 문제일까. 잘 아는 곳이라, 그래서 더 불쾌하고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이 알수록 좋은 점이 많지만 때론 많이 알수록 불편할 때도 있다.







여행의 이유


돌아올 땐 호객하는 택시 중 한 사람과 가격을 협상하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내가 머무는 숙소는 우붓 중심가에 있어 어디에도 다니기가 좋다. 맛있다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니 딱 좋다. 딱이야. 카페로 가서 읽으려고 챙겨 온 책도 꺼내어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던 채리가 웬일로 책을 구매해서 읽었는데 파나마로 떠나게 되어 나에게 주고 간 신간이다. 너무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책은 웬만하면 모든 거품이 빠지면 읽고 싶었는데,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좋네 ㅋㅋㅋㅋㅋ 조만간 김영하 작가의 소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어제 블로그에 낯선 곳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안락함에 대한 글을 썼는데, 마침 오늘 읽은 구절이 비슷한 내용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는 호텔이 좋아서다.라고. 낯선 곳에서 받아들여지는 안정감 같은 이야기였는데 많이 공감되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왜,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더라? 나의 블로그를 꽤나 오래 지켜봐 온 이웃님들은 알고 있겠지만 나는 맨날 했던 소리 똑같이 또 하는 술 취한 아저씨 같은 타입이므로 한 번 더 말해보려고 한다. 처음엔 삶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암에 걸려 죽던지, 우울증에 걸려 죽던지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그래서 돌파구로 생각한 것이 여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세계여행을 떠나기도 하니까. (나는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방송국 놈들 좋은 프로 많이 만들어주세요~~) 너무 좁은 세상에서 아등바등하지 말고 조금 더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시각으로 삶을 다시금 바라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했다. 그것에 거창한 이름을 붙인다면 자아 발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지구라는 별에 태어난 의무를 충실히 하려고 여행을 떠난다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땅에 발을 디뎌보고 다른 언어와 문화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지구에 태어난 나의 의무. 그러니까 여유가 있어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고돼서 도피를 하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은 그저 의무다. 꼭 해야만 하는 것. 나이와, 시기를 떠나서 언제든 해야만 하는 것. 물론 그것들이 모여 더욱 다채로운 세상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음식들을 만나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그것이 긍정적 일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현재의 나는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한다.



순대 국밥이 그리운 이 밤, 우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