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발리 2019

by 도연

"아쉽지 않을 만큼, 여행."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스미냑에서의 첫 번째 날이다. 우붓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다가 떠나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작지만 잘 가꾸어진 정원도, 잘 포장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이 길 위, 여행자들과 상인들이 뒤섞인 모습도 아쉬워지기 전에 많이 담아 가려 한다.


여행과 사랑은 닮은 것이라고 한다. 여행도 사랑처럼,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 정도면 됐어, 적당해.'보다는 '후회를 남길지 모르니까 조금 더 있다가 떠나야지. 저기 끝까지 가봐야지.' 끝에 닿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으니까, 저 길 끝에 별것이 없더라도 힘들어도 끝까지. 보통 길의 끝에는 기대하던 풍경이나 달콤한 열매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가만히 누울 때면 그날의 나의 선택들이 옳았다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그 시간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길의 끝을 보겠다고.





"몽키야, 내 가방은 안돼!!"


원숭이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몽키 포레스트로 들어가면 정글 속으로 들어온 듯 우거진 숲이 천지로 펼쳐져 있다. 원숭이 가족들은 사람들의 가방을 뒤지기도 하고, 사육사에게 옥수수를 꺼내달라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귀엽긴 한데 조금 무섭기도 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내 가방을 뺏어가려고 해서 가방끈을 서로 잡고 대치를 한 후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졌고 (ㅋㅋㅋㅋ) 숲이 우거진 만큼 벌레가 많은 편이라 오래 머물진 않고 나왔다. 숲 내에 작은 전시장이 있는데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끄뜻이 리즈에게 주는 그림과 같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발리의 우붓에는 특히나 예술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19세기 후반, 발리의 한 영주가 예술을 아끼고 지지하는 사람이라, 전 세계 예술가들이 우붓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로 우붓은 발리에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현재에도 예술가와 또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여행지라고. 그래서인지 우붓의 곳곳에는 많은 미술관과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골목 곳곳을 걸으면 작고 예쁜 상점들이 많아 걷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발리에 여행을 왔다고 하니 지인이 SNS에 댓글을 달았다. "발리 너무 좋지? 우붓은 사랑이고 말이야." 사실 댓글을 볼 때만 해도 발리의 첫째 날이라 큰 감흥이 없었는데 마지막 날인 지금, 마음껏 얘기하고 싶다. "우붓은 사랑이에요."










"넌 계획이 없구나?"


우붓을 떠날 시간이다. 12시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Made에게 5시쯤 돌아오겠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마데는 택시는 불렀어? 잘 가-라고 인사하며 가방을 밖으로 내어주려고 했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택시도 안 불렀고 알아보지도 않았다. 뭐 정 안되면 블루버드 택시를 부르면 되었지만 Made에게 혹시 아는 택시 기사가 있냐고 물었다. Made는 그럼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캐리어를 품에 안고 마데의 바이크를 타고 트래픽이 없는 한적한 동네까지 가서야 마데 차를 만날 수 있었다. 마데의 차는 모닝이었다! (발리에서 모닝의 이름은 올-뉴라고 했다. 올 뉴 모닝인데,) 암튼 이 차는 한국 브랜드의 차라고 말하자, 마데는 알고 있다고 기아 차는 엄청 튼튼하고 잘 나가서, 발리에서는 도요타와 기아를 많이 타지만 자신은 기아 차가 더 좋다고 했다. 영어가 조금 더 잘 되었더라면 요즘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이리저리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했다.(ㅋㅋ)


발리에 와서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You know 김정은?" 이었다. 전 세계에서 이제 분단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니까 이렇게 다들 김정은과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매일 침대에 누워서 하고 싶었던 말을 (영어가 짧아 하지 못했던 말을) 생각해보며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있고, 언젠가는 통일이 되길 바란다."라는 문장을 영어로 외워서 다음 여행 때 혹시 누가 물어보면 꼭 그렇게 말해주리라.










"일몰 사냥을 떠나볼까?"


우붓에서 만족스러운 일몰을 보지 못했는데 서쪽으로 오니 하늘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확실히 볼 수 있다. Made의 차를 타고 오면서도 지는 해를 보며 감탄했고, 앞으로 또 친구들과 볼 일몰이 기대된다.


친구들의 캐리어에는 김치와 고추 다대기가 있다. 육개장도 있고 김치찌개도 있다. (물론 진공포장 제품) 그리고 틈새라면도 있다. 나는 친구들이 기다려진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오라고 메시지를 100개는 보낸 것 같다. 호텔에 먼저 체크인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호텔보다는 풀빌라에 가깝고 풀빌라보다는 저렴한, 부티크 빌라? 아무튼 그런 곳이다.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해 숙소를 훑어보고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때웠다) 지금은 일몰 사냥보다 김치가(친구들이 X) 더 기다려진다.


친구들을 해외에서 만나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해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혹은 해외여행 중에 친구들을 만날 때.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언어를 내뱉는 기분. 불안하고 불편한 여행에서 편안한 사람을 만나 따뜻한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기분은 어떨까? 런던에도, 스웨덴에도, 필리핀에도 지인이 있긴 하지만 편하게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누워 비벼대기는 어쩐지 좀 머쓱한 관계인데, 얼마 전 채리가 파나마로 이주를 해서(왠지 채리의 신혼집에선 눈치 없이 눈치 없이 부비적될 수 있을 것 같아 ㅋㅋ) 나의 다음 긴 여행 계획은 남미로 반강제 결정을 했다.






김치와 다대기가 도착했다.(친구 1 : 김치, 친구 2 : 다대기) 김치와 다대기는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들여놓은 뒤, 바로 맛집으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 마침 어느 여행 티브이 쇼에 나온 (박나래가 다녀갔다던가,,)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바비큐가 후 메뉴였지만 바비큐보다는 나시고랭과 미고렝이 더 맛있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메뉴 2개도 고민하고 시키는데, 김치와 다대기가 함께 있으니 눈에 보이는 메뉴를 다 시켰다. 우린 여행 동안 3명이서 메뉴 6개는 기본이었고 부어라 마셔라 먹어라 하며, 즐거운 여행을 시작했다. 아 참, 그리고 내가 총무가 되었다. 며칠간 발리에 머물렀기 때문에 화폐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나도 계산을 The love 게 못하는 사람 중 한 명이라 그냥 대충 돈 내고 나왔는데, 아무래도 친구들은 눈치를 못 챈 거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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