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으로도 웃고 있니?, 발리 2019

by 도연


"간으로도 웃고 있니?"


오늘은 조식을 거르고 우붓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는 "Yogabarn"요가원에 왔다. 1회 이용권은 각 클래스마다 30분 전에 reception이 오픈되며, 수업 전에 결제를 하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못하는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상황에 맞는 단어나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어버버-하는 일이 잦다.(그게 못하는 거야-) 리스닝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그때의 상황과 표정, 몸짓으로 의도를 파악할 정도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대충 알아듣고, 또 알아듣는 척을 하곤 한다.(그게 영어 못하는 거라고ㅡ) 요가 클래스가 영어로 진행되는데 큰 심적 부담은 없었다. 자고로 요가란 말보단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10시 30분에 시작한 Gentle Yoga class는 호흡과 기초적인 동작을 수련하는 기초 클래스였다. 일찍 도착해 첫 번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수업 시작부터 온몸을 펼치고 눈을 감고 릴랙스를 하는 준비운동을 시작으로 하는 요가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시작되었다. '얼마예요? 깎아줘요. 어디로 가나요?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생존 영어 정도를 익히고 있는 나는, 몸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영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눈을 뜨고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느라 마음의 평화는 얻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 시간 동안 야자수 잎이 부딪히는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 사람들이 땀 흘리며 호흡하는 소리만이 자연의 소리가 어울려 채워진 이 공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선생님은 클래스 내내 같은 말을 반복했다.


"미소를 짓고 계시나요?"


온몸을 배배 꼬고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있는 위태로운 동작에서도 선생님은 줄곧 smile?이라고 했다.

인생 책,이라고 쉴 새 없이 말하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 소설 Eat, Pray, Love에서 구루가 리즈에게 그런 말을 한다. "간으로도 웃어야 해. 그 미소가 자네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어 줄 거야."


오늘은 우붓을 걷는 내내 간으로도 웃고 있다. 예쁜 힘을 위해서.





"기분 좋은 오후"


요가를 하고 나와 근처 맛있다는 누들 집으로 향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온몸에서 시원한 맥주를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맥주 한병을 한숨에 절반을 마시곤 온몸이 행복으로 가득찼다. 프라이드치킨과 누들, 그리고 맥주까지. 한국 사람들의 후기가 꽤나 많았던 이곳은 일식과 한식, 그리고 인도네시아 스타일이 아주 절묘하게 잘 섞인 듯한 맛이었다. 면발과 토핑은 인도네시아 식으로, 일본 식으로 돼지 육수와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 맛,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으로.(실제로 메뉴판에 코리아 스타일이라고 적혀있는 걸 본 것도 같다.) 그릇까지 씹어먹을래다 참았네.


밥을 먹는 동안 선선한 바람이 내내 불어온다. 발리의 낮은 태양이 뜨겁고 그늘 아래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하나도 덥지 않다. 해가 지고 나면 오히려 좀 쌀쌀한 정도다. 새벽이면 잠깐 세차게 소나기가 한번 지나간다. 우붓에 있는 5일 동안 이런 날씨의 루틴은 한 번도 어겨지지 않았다. 비가 오고, 우중충한 날씨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파란 하늘은 중독과도 같아서 그래도 꼭 하나만 고르라면 파란 하늘을 고르겠다. 매일 이렇게나 하늘이 높고 파란 나라라니, 게다가 좋아하는 비가 오는 계절이 절반이라니,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답다.







"가장 나다운 하루"


맥주를 한 병 더 마시고 커피까지 마시고 들어오니 졸음이 몰려온다. 커튼을 닫고 오늘은 낮잠을 청해본다. 관광은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은 어쩐지 가장 나다운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만족스럽다. 저녁마다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와, 오늘은 무엇을 했냐고 물어올 때면 "음- 오늘은 낮에 요가를 하고 밥을 먹고 집에 와서 잤어, 벌써 저녁이네."

"밖에 나가서 술도 좀 마시고 재밌게 놀지 왜 그래 독거노인처럼"


나는 이런 방식이 좋다.

별것 없는 하루. 최소한의 일정으로 하루의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않는 여행. 가장 나다운 여행이다.

해가 지는 시간,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내일은 숙소 호스트인 Made와 바이크 투어를 하기로 했다. 투어라고 하기엔 좀 뭣하지만, 선셋을 보러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일몰 사냥을 함께 떠나주기로 했다. 발리에서 하루하루를 나답게 채워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prologue. 나의 연애 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