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끼, 발리 2019

by 도연


"어떤 여행을 선호하세요?"


보통 친구들은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와 친구들은 취향이 정 반대이다. 참, 전혀 취향이 맞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린 술 취향이 잘 맞다. 밤새 술을 마시고 숙취에 시달리며, 다음날 출근해서 삶을 포기하는 지점까지 아슬아슬하게 살아내는 것도 우린 닮아있어 20대의 후반은 김치와 다대기, 육개장, 김치찌개.. 등등(ㅋㅋㅋ)과 술독에 빠져살았다. 우린 취향이 아주 많이 다르지만 그 덕에 서로의 취향과 방식을 존중한다. 비싼 비행기 티켓값을 지불하기 싫은 나는 경유 항공으로 불편함을 선택하는 반면에 친구들은 비싸지만 빠르고 편한 직항 편을 이용하고도 우선 서로 OK를 외친다. 그래 마음대로 해.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땐 걷고 싶었고 친구들은 땀을 흘리며 내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하면서도 잘 따라와 주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비싼 호텔에 묵고 싶다고 하면 난 흔쾌비 비용을 지불하고 친구들의 선택을 따른다.(혼자 있을 땐 숙박비 3만 원, 친구들과는 숙박비 30만 원)


다대기와는 몇 년 전 오사카 여행도 함께 했는데, 그때도 우린 쇼핑을 할 때에도 각자 하고,(난 명품관 쇼핑은 질색이다.) 며칠은 내가 선택한 저렴하고 현지인이 살고 있는 airbnb 숙소에 묵고 하루는 친구가 선택한 비싼 호텔에 묵으며 서로의 취향과 방식을 적절히 섞어 여행했다.(비싸고 좋은 숙소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저렴하고 아늑한 숙소를, 합리적인 가격을 더 선호할 뿐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며 여행했다.







오늘은 뭐 하지?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낮잠을 늘어지게 잤다. 1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 클럽 라운지에 있는 수영장에서 샴페인과 어제 남은 햄버거를 먹으며 수영을 했다. 특별한 계획도 없었지만 하루 정도는 바다로 가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오늘 빌라에서 쉬기로 했다.


김치와 다대기는 여행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푹 쉬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도 물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또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이벤트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곧 음식이라고 연결 짓지는 않는다.(맛집을 투어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포인트겠지만) 그렇다면 난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특별히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 글쎄, 특별히 구경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야. 쇼핑은 더더욱 하지 않고, 낯선 이들을 친구로 사귀어 얘기를 나누는 것 또한, 언어의 장벽 때문에 그리 즐기는 편도 아니야.


부정적인 타입이거나, 사소한 것에 큰 감동을 받지 못하는 감흥 없는 타입의 사람은 또 더더욱 아닌데 말이지... 그렇담 나는 여행 속에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는 동네 카페를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커피의 맛을 판단할 만큼 대단한 미각도 없는 주제에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다니고,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펼쳐 글을 쓸만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는 것도 좋아한다. 숙소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보단 동네 산책을 하듯 가볍게 2-30분쯤 걸어갈만한 곳을 구석구석 다니기를 좋아한다. 화려한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보단 동네에서 흔히 살 수 있을 법한 작고 귀여운 기념품 하나 정도를 사고 주머니에 쑤셔 넣고 여행의 끝까지 함께 하는 걸 좋아한다. 나무가 울창하고 꽃이 많이 핀 공원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폰에 담아온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한다. 여행 전에 여유가 좀 있다면 그곳에서 들을 만한 분위기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두기도 한다. 같은 길을 여러 번 걷는 걷도 좋다. 하루 이틀 걷다 보면 그 길이 익숙해지고 언제든 눈을 감아도 거리의 풍경이 떠오르도록 담아두는 걸 좋아한다. 나는 참 이토록 소박한 사람이다. 어쩌면 내게 여행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끔은 낯섦이 익숙함이 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마시던 커피의 맛을 찾아다니고, 낯선 풍경에 익숙한 맛과 분위기가 맞아떨어질 때를 찾고, 언제라도 내가 살 법한 저렴하고 작은 기념품 정도를 주머니에 익숙하게 넣어 다니는 행위. 집에서도 늘 듣던 음악을 들으며 편안한 초록색의 풍경을 보는 것. 그런 것이 나에게 여행이다.





한국에선 늘 식사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야식과 폭식을 일삼고 있다 보니 소화기관이 많이 안 좋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이제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늘 다짐뿐이다. 아무튼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조금씩 자주, 일정 시간 잘 챙겨 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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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에서 느즈막히 나와 태국 음식점에 갔다. 쌀국수, 똠얌꿍, 그린커리, 사태, 스프링롤, 볶음밥까지 시켜 야무지게 다 먹었다. 배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20대의 나였더라면 입에도 못 댔을 음식들. 이젠 없어서 못 먹는다. 여전히 고수는 어렵지만.


밀린 일을 조금 하고 밤이 다 되어서야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이놈의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자니 하루가 너무 바쁘다. 소화가 되기도 전에 음식을 먹어야 하니 힘들어서 자기 전에 매일 소화제를 먹어야되는 배부른 여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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