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선 별 일 없이 산다, 발리 2019

by 도연

발리 섬, 남쪽 끝.






발리에서 열흘째 머무르고 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치클럽에서 해질녘까지 있기로 했다. 먹고 마시고 수영하고를 하루종일 반복하기로. 오늘 가게 될 비치클럽은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비치클럽이란다. 어제 저녁을 먹으러 나가다가 만난 택시드라이버와 내일 발리 남쪽까지 같이 가기로 약속 했다. 드라이버의 이름은 크리스다. 나는 당연하듯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Promise?" 하니, 크리스는 Promise!하며 함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다음으로 엄지를 내밀었더니 엄지 도장을 쾅 찍었다. 손가락 약속은 만국 공통 바디 랭귀지 인건지, 아무렇지 않게 택시에서 내려 걷는 중에 의아하다. 크리스는 어떻게 이 엄지 도장을 아는 거지? 아무튼 약속시간에 호텔로 데리러 온 크리스의 차를 타고, 옴니아로 갔다. 내가 경험한 발리의 택시 드라이버들은 다들 호의적인편이고 말이 많은데, 이 길은 빠른 대신에 길이 안좋고, 저쪽길은 길이 좋은 고속도로지만 트래픽이 심하다 같은 류의 설명, 그러니까 나 같은 여행객들은 어차피 모르는 길을 설명하고 선택하게 한다던지, 어디서 왔냐, 어제는 뭘 하면서 보냈냐, 오늘이 몇일째야? 같은 류의 질문들을 많이 한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대답하다보니 어느샌가 조금 더 깊이 대화를 시작할라치면 갑자기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오면서 그때부터 대화가 단절된다.(영어 못하는거 맞지ㅋㅋㅋ)





크리스가 물었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말을 쓰니?"


"거의 같지. 그런데 조금 달라. 억양이."


"어떻게 다른데?"


"남한은 부드럽게 안녕하세요~ 하고, 북한은 안!녕!하!세!요! 이렇게 Army style로~"




뒷좌석에 앉은 친구들이 폭소했다. 이도연이 유투브 했으면 백만조회수 찍었을거라며. (ㅋㅋㅋㅋㅋㅋ) 물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남한과 북한은 악센트가 조금 달라. 북한만의 사투리 같은 것이 있다고. 그런 얘길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Army style....

We want peace..했어야 했는데...









사냥엔 소질없는 사냥꾼의 삶






"나 여기서 정말 제대로 된 일몰을 보고 싶어!"


스미냑에 온지 3일째가 되도록 제대로 된 선셋을 보지 못했다. 해가 지는 시간에 해를 보러 나가는 일이 이렇게도 번거로운 일임을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매일 뜨고 지는 해'라지만 제대로 된 일몰은 보기가 정말 힘들다. 구름이 많거나, 날이 흐린 날, 그리고 그날의 온도나 계절에 따라서 해가 지는 시간은 달라지고 하늘 색도 매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날 어떻게 멋진 일몰을 보게 될 지 예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매일 볼 수 있는 일출이라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 볼 수 있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겠는가.(그렇다. 난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깨끗한 일출을 감상한 바 있다 하하하하, 조상님덜 감사해유) 그런 저런 이유로 발리에선 제대로 일몰을 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아 내가 일몰 사냥꾼이거든~ 일몰 보러 가자 제발"

"니가 뭔 사냥꾼이야, 맨날 사냥 실패하시는 거 같던데?"


그래, 사냥에 자주 실패하는 사냥꾼도 있는거지 뭐. 안그래?

그래서 여행 끝까지 제대로 된 선셋을 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미리 드려보자면,

결국 제대로 된 일몰은 보지 못했어요. 일몰 포인트를 갔었는데 역시나 구름이 가득, 했고요.

발리에 하늘에는 언제나 구름이 많아서 깨끗한 일몰을 보는 일은 정말 행운에 가까울 것 같더라구요.








해가지는 시간까지 옴니아에서 먹고 눕고 마시고 수영하고를 반복했다. 노을이 내린 하늘을 보다가 다시 스미냑으로 갔다. 오늘은 한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매일 밤마다 라면과 반조리 식품과 김치와 다대기를 먹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정성스레 차려진 한상이 받고 싶은 날이다. 빨간 국물과 찰진 하얀밥...을 기대했지만, 밥은 찰지지 않았다. 아무튼 오랜만에 김치볶음밥과 짬뽕(라면), 삼겹살을 먹었다. 또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하고...





벌써 마지막 밤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고도 험난하겠지만 어쨋든 발리에서 잠드는 마지막 밤. 아쉬운대로 밤새도록 부어라 마시라 하고 싶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소주 한병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우리 셋은 식탁 앞에 모여 앉았다. 곧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해서인지, 김치는 내 노트북을 빌려 일을 하기 시작했고 다대기도 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하느라 마지막 밤의 감상을 즐길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현실친구) 그래도 영 아무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 우리 셋 그래도 여행 동안 한번도 싸우거나 트러블 없이 잘 지내고 간다고 서로 얘기했다. 보통 여행이 힘들수록 감정이 상하기 마련인데, 이번 여행은 힘든 일이 없어 그런게 아닐까 했다. 너무 많이 걷거나 땀을 흘리거나, 고난의 연속인 여행에선 서로 예민해질 수 밖에 없어 서로에게 얼굴을 붉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여행을 떠올려보면 보통 캠핑을 하거나 힘든 여행을 할 때는 여행을 함께한 사람들과 조금씩은 트러블이 있었다. 물론 평화롭게 잘 해결되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지만. 북유럽을 한달가까이 캠핑으로 배낭 여행을 할 때도 일주일 넘게 씻지 못하고 걸어다녀 숙소를 잡을 까 말까 하며, 언니들과 언쟁을 벌인 때도 있었다. 카페에 앉아 두시간을 넘게 이야기 하면서 알게 된 건, 사실 속마음은 모두 힘들지만 캠핑으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싶었는데 서로 씻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 숙소를 가지 않을래? 하고 의견을 냈던 것을 알게되었고 우린 모두 웃으면서 그럼 무리하게라도 일정을 소화하자고 평화로운 결론을 내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몽골 사막을 여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모두는 긍정적인 유형의 사람이었지만 다들 힘든 와중에 누군가는 일을 돕지 않고 쉰다는 이유로 마음 속으로 원망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면 아무리 편안한 잠자리와 여행이라도 분명 안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오래된 친구끼리 여행을 떠나, 편하고 여유롭고, 늘 만족스러운 식사와 잠자리를 하게 된다면 얼굴을 붉힐일은 거의 없다. 적당히 서로의 성향을 알고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기 때문이리라. 나는 나의 여행 취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친구들이 여행을 제안했을 때도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먼저 발리로 떠나 나만의 시간을 가졌으며, 충분히 걷고, 충분히 쉬고,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 친구들의 방식을 최대한 따르려고 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걷고 싶지 않지만 내가 걷고 싶어하는 걸 알기에 기꺼이 따라와주고 낮잠을 자거나 일찍 쉬고 싶을땐 룸의 불을 꺼주고 조용히 퇴장하곤 했다. 별일 없이 보낸 열흘의 시간이 참 감사한 밤이다.


별일 없이 보낸 열흘의 시간이 참 감사한 밤






이제 곧 집으로 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늙을 개가 걱정되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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