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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pr 10. 2020

여행 가면 예쁜 스타일, 발리 2019


넌 계획이 다 있구나?


발리를 떠나는 날이다. 벌써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니, 일상을 살았더라면 열흘이란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을 텐데, 여행 속 하루는 체감상 평소 보내는 시간의 절반쯤 되는 것 같다. 오늘은 마지막 날인 만큼 제대로 된 선셋을 보겠다는 계획이 있어 섬의 서쪽을 따라 이동해 볼 계획이다. 얼마 전 발리를 다녀온 친구가 알게 된 친절한 기사가 있다며 전화번호를 보내주었고 전날 와얀에게 메시지를 보내 약속을 잡았다.(이 분도 첫째) 차와 드라이버까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 자, 이제 어디로 갈까?

- 하하 우린 계획이 없어, 노플랜~ 우선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줘.




계획이 없는 여행. 즉흥 여행. 뭐 이런 무책임한 말에 설레곤 했다. '계획 없이 떠나왔어.' 이런 류의 로망이랄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계획이란 필요하다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물론 그 계획이란 것이 분 단위로 쪼개며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내가 방문하는 국가와 도시에 대한 정보, 이동 수단에 대한 검색,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의 포인트 같은 것들이다. 나의 경우엔, 원두가 맛있다는 카페, 황홀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 이 정도의 계획만 있다면, 그날 기분에 따라 오늘은 어떤 카페를 들를지, 구름이 적게 낀 날 일몰을 보러 바로 출발할 수 있다.


오늘의 계획은 없었지만, 미리 알아봐둔 덕분에 기사와 차량까지 저렴하게 구했으니 계획 없이, 무책임하고 짜릿하게 바다로 냅다 달려본다.


계획 없이 무책임하고 짜릿하게 바다로 냅다 달려보자.









여행 가면 예쁜 스타일


주변 사람들이 내가 여행을 가면 예쁘다고 했다.(정말입니다) 여행 가면 예쁜 스타일이니 여행 가서 남자를 꼬셔오란 말도 들었다. 실제로 여행 가서 남자도 많이(?) 만났다.


여자는 사랑받을 때 예뻐진다고들 하지. 실제로 연애를 하면 표정도 밝아지고 더 자신을 가꾸게 되다 보니 예뻐지는 현상이 일어나곤 하는데, 내가 여행할 때 딱 그렇다. 여행을 할 땐 찌푸릴 일도 없고, 많이 웃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낯선 기운을 충분히 받으며 지내다 보면 점점 예뻐지게 된다. 한국에서보다 표정이나 말투, 몸짓이 조금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자유로움 그것이 나를 예뻐지게 만든다. 평소에도 많이 웃고 행복한 기운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지만, 늘 매 순간 행복하긴 힘들다. 짜증이 쉽게 나고, 화도 잔뜩 낸다.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여행에선 스치는 누군가에게도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한다. 주로 무엇을 먹는지, 가족은 몇이나 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또 그 궁금증을 어떤 말로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는 여행에서의 시간들은 현실로 오면 금세 소진되고 만다. 일상으로 돌아와선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기가 피곤해진다. 만나는 사람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고, 설레지 않고, 에너지 소모로만 느껴진다. 만남을 피하고, 대화를 거부하고, 침대에만 틀어박혀 있고 싶어 하는 일상에서의 나는 자유롭거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또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 왜 이렇게나 어려운지.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일이란 참 힘들다.


매 순간 웃고, 자유롭고, 낯선 이들에게, 지나치는 풍경에게, 흘러가는 구름에게 호기심을 갖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미소를 짓는 그런 여행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은데, 어렵다. 여행에서만 아니라, 매일 예쁜 사람이고 싶다. 간으로도 미소를 짓는 사람이.


여행에서만 아니라, 매일 예쁘고 싶다.






마지막 Sunset


서쪽 해변가 어느 곳에 일몰 포인트가 좋다고 해서 공항에 가기 전 잠시 들렀다. 마지막 날, 발리가 나에게 준 선물.


나에게 발리,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고, 그리고 나서도 계속 계속 생각나는 섬이 될지.

그리고 이 여행으로 나는 또 얼마큼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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