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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pr 16. 2020

태국의 재발견, 치앙마이 2018


2 달여 전에 사놓은 티켓, 치앙마이행. 매일 기대하고 생각하면 절대 출국 디데이는 올 것 같지가 않기 때문에 비행기표는 예매 후 바로 까먹어야 한다. 그래야 그날이 온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출국을 하려고 보니, 처리할 일이 꽤나 많았다. 2주 동안 한국에 없다고 생각하니 하던 일을 마무리하려고 일주일 동안 내내 일만 했다, 비행시간이 길어 하루를 날려야 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느라 잠을 단 1분도 못 잔 채 공항으로 출발했다. 밤을 새운 데다가 저가 항공을 타고 가다 보니 불편해서 비행기에서도 잠을 못 잤다. 아무튼 컨디션이 최악이다.

돈므앙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transfer를 하고, 연착이 되어 5시간을 대기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너 - 무 피곤했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집을 나선 지 14시간 만에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숙소는 공항에서 가까웠다. 택시로 10분 남짓. 공항과 시티가 이렇게 가깝다는 것에 첫 번째로 마음에 들었다. 택시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곳으로 가 목적지를 말하면, 그들이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고 (태국 사람들이 엄청 스마트하는구나 느낀 점!, 심지어 기사들이 모두 젊었고 잘생겼더라.) 가격을 부른다. 150밧 - 한국돈으로 5천 원쯤, '와, 정말 싸는구나.'

인천공항에서 우리 집까지 택시비 5만 원인데.. 첫인상 좋은데?


태국은 12시 이후에 술을 팔지 않는다. 지금은 11시. 한 시간 만에 술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블로그 검색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이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검색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 그리고 음악이 나오는 타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영어를 조금 할 줄 아셨는데, 우릴 보더니 카-와-이!라고 하셨다. (왜 갑자기 일본말을 하는 거지?라고 잠깐 의심했지만 일단 귀엽다 해주니 기분이 좋아서 땡큐!) 몇 번 대화를 하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놀랐고, 맥주에 얼음을 하나 띄워서 마시니 너무 기분이 좋아서 나도 놀랐다.

너무 피곤해서 호텔에 가서 당장 잠을 자고 싶었는데, 맥주 한잔에 흘러나오는 태국 음악에, 낯선이 와 서툰 영어로 대화를 몇 번 주고받으니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샘솟았다.
갑자기 목구멍으로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한 것 같아!






10년 전 대학 졸업여행으로 왔던 태국. 4박 5일 내내 가이드를 따라 라텍스 가게, 진주 샵, 화장품 가게 등을 돌았다. 하루에 한 번은 코끼리를 타고, 게이쇼를 구경했으며, 나이트클럽에서 선정적인 댄스공연을 봐야 했다. 도무지 이 여행이 왜 즐거운지, 태국이란 나라가 도대체 어디가 매력적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저 외국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해방감을 느낄 뿐. 그것 말고는 좋은 게 한 가지도 없었다. 남자 친구와는 짜증지수가 높아 매일 싸웠고 (그때 cc였다.) 앙코르와트까지 비포장도로를 거의 8시간을 버스로 갔으며(에어컨도 나오지 않았음) 음식은 가이드가 지정한 식당에서 매일 한식이나 중식을 먹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유여행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극단적으로 꺼려하는 유형의 사람이 되었다.


싫어하던 여름나라에 대한 악몽은 필리핀에서 먼저 깨졌다. 음식은 여전히 입에 맞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친절했고 따뜻했다.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 해서 동네를 산책하는 등, 편하게 다니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좋았다. 더운 것도 참을만했고 한국과 다른 계절이라는 매력이 굉장했다. 가이드가 있는 여행을 싫어했던 취향은 몽골에서 잉케로 인해 완전히 바뀌었다. 좋은 가이드를 만난다면 가이드가 인솔해주는 여행도 즐거울 수 있겠구나, 어쩌면 24살의 나는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 었는지도.
덥거나 춥거나, 벌레가 많거나 하는 것들은 캠핑이나 배낭여행을 하면서 바뀌었다. 심지어 화장실이 없어도 괜찮은 정도로 단련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엔 혼자 티켓팅을 했었다. 당시 나는 지쳤고 작아진 것만 같은 기분에 허덕이던 때였다. 좋은 곳은 함께 다녀야 되는구나.라고 하와이를 다녀오며 마음먹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함께 해주면 좋겠다 라고 내심 생각도 했고, 그래서 발리에 가겠다는 친구에게 치앙마이행 티켓을 끊도록 설득했다.

한 달 전에도 두 달 전에도 그리고 일 년 전에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여기 치앙마이에서 이렇게 또 여느 때와 다름없이 HONNE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글을 쓰게 될지,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며 사랑한다고 말하던 이에게 세상 누구보다 아프게 마음을 할퀴는 상처를 받게 될지, 일이 없어 고민이던 내가, 치앙마이까지 와서 밤새 작업에 매달리게 될지, 고수를 퐁퐁 맛이라며 싫어하던 내가 똠 양 꿈을 맛있게 먹는 날이 오게 될지, 더운 나라는 질색이라며 태국은 죽기 전까지 안 가겠다고 하던 내가 치앙마이에서 행복을 외치게 될지. 정말 정말 몰랐다.

이렇게 인생은, 삶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드라마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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