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일, 이번생은 처음이라.

이번 생은 처음이라, tvN 2017

by 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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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포기하는 세대, 3포 세대다. 386세대, X세대, Y세대가 지나간 것 처럼, 사회에선 우리를 “3포 세대” 라 한다.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모든 조건을 충족해도 취업의 문은 갈수록 높아져 취업을 포기하고, 학자금 대출로 빚을 진 사회 초년생들은 집을 살 능력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고, 맞벌이에 육아를 감당하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한다. 대기업에 취업도, 돈이 없어 결혼도, 출산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는 나,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어디까지 포기해야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10년 동안 너도 참, 많이 치이고 다쳤구나.
올라올 땐 참 반짝거렸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했을까,
결국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내려갈 거면서.
이곳에 내 자리 같은 건 원래 없었던 건데.




첫 취업을 준비하며 여러 기업에 면접을 다녔다. 가진 거 라곤 3점을 겨우 넘는 평범한 졸업학점과 지방대 졸업장이 전부였다. 대기업에선 서류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어쩌다 면접 기회가 와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쭈물하다 얼굴이 벌게져서 나오기 일쑤였다. 면접장에 앉아있던 자신이 초라하다 느껴졌다. 면접을 끝내고 테헤란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화려하고 높은 빌딩과 많은 사무실 속에서 나를 원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구나...' 테헤란로, 세련된 이름만으로도 나를 밀쳐내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대기업에 취업을 포기했다.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만들어둔 덕분에 작지만, 가능성 있는 회사에 입사했다. 서울에 온 지 10년째. 그동안 힘들고 외로워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기도 했었지만, 나는 결국 다시 서울이다.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면서도 지옥철을 타고 꾸역꾸역 출퇴근을 하고, 퇴근길에 반짝이는 한강 다리들을 보며, 우뚝 솟은 남산타워를 보며, 강변북로 옆 고급 빌라들의 창문들을 엿보며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통장에는 원룸 하나 얻을 보증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졸업도 하기 전에 이미 신용불량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내 이름 석 자로 된 핸드폰 계약을 하지 못했고, 취업 후 몇 년간 신용카드조차 만들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았고, 서른이 넘어서야 2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있었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인 것 같은데,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이제야 자유로워졌는데, 또 다른 문을 열어야 한단다. 결혼이라는 문. 결혼하려면 여자는 최소 3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운의 88년생들.
대한민국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태어나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세대.
풍요와 빈곤을 동시에 맞본 세대.
그래서 우리는 비운의 88년생이라 불린다.

우리에게는 결혼도 연애도, 우리도.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고
유대와 낭만이라는 평범함도
비용과 에너지가 되어버렸다.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적어내던 친구들이 많았던 국민학교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성인이 된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 하면, 꿈이 없다고 비난한다. 편하게만 살려 한다며 손가락질한다. 엄마를 꿈꾸는 건 촌스럽다고 여긴다. 그래서 꿈을 좇겠다 하면 이번엔 평범하지 않다고, 왜 남들처럼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 하느냐고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다. 난, 결혼, 출산마저도 포기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우린, 어느 편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지, 무엇을 더 포기해야 할지. 인생, 어렵기만 하다.





대사 발췌 : 이번 생은 처음이라, tvN 2017 / 극본 윤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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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명대사를 인용하여, 작가 개인의 삶을 이야기 한 에세이 "엄마, 왜 드라마 보면서 울어?" 의 브런치 연재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재 발간합니다. 출간 후, 작가가 직접 일부 수정하였으므로 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엄왜울'의 종이 책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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