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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pr 30. 2020

나 사실 불교였어. 치앙마이 2018


오늘은 동굴 사원으로 간다. 나는 불교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무신론자였고, 지독한 기독교 집안이었던 X를 만나 교회를 몇 번 나간 이후로, 역시나 기독교보다는 불교 쪽이 나의 가치관과는 잘 맞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법륜스님 즉문즉답 보며 이별을 겪어냈다.ㅋ) 그래서 앞으로 누가 종교가 뭐니?라고 물으면 "불교야."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거리에 흡연자가 많이 없어 태국인들은 담배를 그리 많이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처음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본 건, 사원의 스님이었다. 아니 뭐, 스님도 담배를 피우겠지. 기호식품이니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떤 스폿에 이르러 소원을 비는 곳들이 있다. 오늘은 사원에서 신에게 구체적으로 소원을 빌어봤다.

"치앙마이에서 돌아가면, 아팠던 기억일랑 다 편안하게 해 주시고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세요."


호숫가에 개구리 한 마리가 누워있다.

치앙마이엔 아기자기한 동물 인형들이 많이 놓여있다. 담벼락에도, 사원들의 돌탑들 위에도, 호텔의 야자수 옆 벽장식에도 아기자기 귀여운 인형들이 있다. 개구리 누워있는 표정을 보자니, 치앙마이에 떠나 온 내 모습 같다.






인생 뭐 있냐, 즐겨!







동굴 사원을 갔다가 뭘 할까 하다, 예술가 마을 (반강왓)이란 곳이 근처에 있으니 가보기로 했다.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구글맵으로 지도를 보고 걸어갔다. 치앙마이의 여름이 시작된 3월, 40도를 웃도는 기온이라고 해서 겁을 먹었는데 여행의 마법 덕분인지 생각보다 덥지 않다.

.

라는 생각은 10분 이상 걸으면 깨끗하게 사라진다. 땀이 주르륵.....


땀을 흘리며 치앙마이의 시골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그냥 한국을 떠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익숙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너 따위 안중에도 없다.'라는 태도로 나를 대하는 한국이, 내가 속한 사회가 싫었다. 하루라도 빨리 생소한 골목길에서 생경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다시금 행복의 기운을 만끽하고 싶었다. 익숙한 사람과 낯선 사람들이 뒤섞인 지금 이 여행이 좋다.



반왓캉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북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숲이 우거진 파스타집에서 식사를 하고, 투박한 도자기 찻잔을 사고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 하루가 다 지나가버릴 것만 같은 곳이었다. 또 올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 뜻밖의 게스트들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분과는 이야기가 잘 - 통했다. 평소 나이의 갭이 없는 친구를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여서 인지 불편함보다는 포근한 느낌을 주는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참 좋다. 그분과도 친구처럼 며칠을 보냈는데, 마지막 날 그런 얘길 한다.

여행에선 '나이를 떠난 동등함'이 있어서 참 좋아요 그렇죠?.



할아버지 여행자도 배낭을 멘 20대 여행객들도 모두 우린 같은 여행 자니까. 모두 이 나라가 낯설기는 마찬가지니까. 누군가는 이 곳이 더 익숙할 지도, 혹은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의 차이일 뿐, 지금 우리 모두는 안락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온 여행자다. 우리 모두는 동등하다.



해 질 녘 즈음이 되어서 다시 우버를 타고 타펠 게이트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 쇼핑을 하고,

귀여워 보이는 티셔츠를 한 장 샀다. 가고 싶던 재즈바에 가기 위해 또 걷기로 했다. 해가 지면 별로 덥지 않아 걷기가 좋은 치앙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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