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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y 01. 2020

연애, 그의 전부가 아닌 일부임을 인정하는 일

"연애, 다시 배우기"






 연애라면 자신이 있었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연애는 서른여섯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상대는 계속 바뀌었고 다른 사랑을 시작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나에겐 가장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 자만은 금물이다. 내가 여태 해왔던 연애 방식은 한낱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해 오로지 직진만 일삼던 치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도 서른여섯이나 먹어서.


 연애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보통은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이별 직후에는 상대가 늘 나쁜 놈으로 치부되기 일쑤여서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숨기지 말고, 좋아하면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껏 좋아해 버리는 것만이 답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연애란, 끊임없는 자기객관화를 통해 사랑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중이다. 상대의 온도에 맞추어 둘만의 온도를 만들어 가는 것, 그에게 있어 내가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부터가 '연애, 다시 배우기'의 첫걸음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그가 전부가 되면 안 된다는 점도 함께 연습해야 한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를 소유물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일이 있어야 하며, 생활이 있어야 한다. 그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서운한 감정이 얼마쯤은 줄어들게 된다. 사소한 것에도 서운함을 느끼고 그 서운함을 표현하고 상대가 달래주길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역지사지' 모든 상황을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인식하지 못한 채 했던 행동이나 말들로 인해 '미안해'란 말을 자주 하고, 상대가 혹여나 서운함을 느끼진 않을까 초조해야 한다면 설레던 사랑이, 불안한 피로감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에게도 우린 서로에게 전부가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전부가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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