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서 파나마로
채리에게
우리가 함께 몽골 여행을 한 게, 2017년이었으니까 벌써 3년이 지났네. 그때 내 기도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까 괜히 감동스럽군. 역시 넌 A 형이구나. 섬세하고 기억력이 좋아. '행복하게 해 주세요'라는 막연한 소망보다는 널리고 널린 이 행복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지. 그때의 난 행복한 순간들을 매번 놓치는 중이었거든. 현재의 나는 어떤 순간에도 곁에 있는 소중함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너도 식물에게 뜻하지 않는 행복을 발견했구나! 나도 카페를 하면서부터 키워온 식물들을 이사한 집으로 들이고 아직도 '죽이지 않고' 잘 살려내고 있어. 식물에 문외한이고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야, 언젠가부터 식물이 좋아지더라고. 이렇게 아줌마가 되어가는 걸까? 식물은 너무 많은 관심을 줘도 죽고, 관심을 주지 않아도 죽더라. 필요로 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고, 과하지 않은 정성을 들이면 알아서 잘 자라는 게 정말 신기하더라고. 최근에는 거실에 '드라코'란 녀석이 있는데 아래쪽 잎이 계속 마르고 죽더라고. 2년을 넘게 키웠는데 곧 죽는 게 아닐까 초조해하다 새로운 잎을 계속 틔우는 걸 보고선 생각했지. '오래된 잎을 떨어트리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키를 높이기 위해서 아래쪽에 있는 오래된 잎을 떨어트리고 새로운 잎을 만들어내는 중이었어. 식물에 열광하는 것, 혹은 산을 오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여행에 미치는 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어. 이렇듯 나도 식물을 키우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돌보는 일에 대한 일, 그리고 내 삶을 꾸려가는 방법을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생각해보곤 해.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키고, 영혼이 우울감에 잠식되지 않도록 매일 책을 읽고 마음을 수양하곤 해. 나만의 하루 의식이랄까. 네가 시호를 재우고 영혼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직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프리랜서다 보니까, 보장된 상황보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일이 많아. 올해 상반기엔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일감이 뚝 떨어졌어. 이 또한 뜻하지 않은 상황인데 또 반면에 이런 불안한 생활을 몇 년이나 했기 때문에 큰 좌절 없이 버티고 있어. 곧 나에게 뜻하지 않은 일거리와 입금이 생겨나길 기대하면서 :) 서울시나 정부에서 지원금 정책도 생겨나고 있으니 꾸역꾸역 버텨봐야겠어. 그래서 여행이나 콧바람 쐬기를 하진 못하고 있어.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야 하거든. 코로나 입국 제한이 풀리면 바로 치앙마이에 가서 한달살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참고 또 참았다가 하는 여행은 또 얼마나 값지겠나 생각하면서.
법정스님의 잠언집에 이런 제목의 산문이 있어. '녹슨 삶을 두려워하라'란 글이야.
제목만 봐도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한 구절을 옮겨 적고 편지를 마친다. 시호에게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와 푸른 자연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 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한다.
: 법정 잠언집, 류시화 엮음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ps. 안 바쁠 때 답장 좀.
연남동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