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땀은 배신하지 않기를

-파나마에서 연남동으로

by 강채리

도연에게.



답장이 좀 늦었지? 육아를 하느라 바빴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저 할 말이 없었어. 너의 편지를 받고서 하루에 한 번은 꼭 노트북 앞에 앉아서 브런치에 접속을 하긴 했는데 도무지 할 말이 없는 거야. 내 일상이 너무 단조로운 탓이겠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가 하는 경험들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그런 건데, 너도 알다시피 두 달이 넘게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새로운 자극이나 경험은 전혀 없이 매일 똑같은 일과의 반복이야. 요샌 그래도 그 일과 안에 남편과 함께 하는 30분짜리 홈트레이닝이 있는데 그게 꽤 활력이 되고 있어. 사실 나는 다이어트를 하면 무조건 '걷기' 운동만 하거든. 뛰는 건 숨차서 싫고 근력운동은 아프니까 싫어. 팔운동을 하면 어릴 때 학교에서 벌 받을 때처럼 팔이 아프고 하체 운동을 하면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복부 운동을 하면 다음날 체력장 다음날처럼 배가 당기잖아. 근데 요즘 아주 잘 맞는 유튜브 속 트레이너를 만나 가지고 운동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지 뭐야. 특히 운동 막바지에 이르면 얼굴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은데 꼭 내가 되게 근사한 사람이 된 기분이야. 그래서 매일 운동을 했어.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 일주일 만에 몸무게를 재봤지?? 근데 몸무게가 늘었어!!!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였지.. 분명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반나절 동안 몸무게 때문에 아주 불쾌했어. 그렇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여기서 좌절하지 않기로 했어. 배우 이시영 알지? 복싱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 여자배우. 그 여자는 매일 아침마다 등산을 해. 주말 마다도 아니고 매일! 그리고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동영상들도 자주 올라와. 너도 알겠지만 온 몸에 근육이 여기저기 제법 크게 붙어있고 말이야. 그 여자가 인스타그램에 살 뺄 때 제발 몸무게 재지 마세요!라고 올렸는데 정말 나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지 뭐니. 자기도 한두 달에 한 번쯤만 인바디 한다면서. 자기도 운동하면서 체중은 오히려 늘었다는 거야. 그래! 이시영도 졸라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체중이 늘었대! 위안을 삼고 체중계를 안 보이는 곳으로 밀어 넣어버렸어. 대신 오늘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눈바디라는 걸 해봤지. 아기 낳고 당최 들어가지 않던 배와 옆구리에 아직도 주렁주렁 살들이 지독하게 매달려 있지만 뭔가 허리라인이 좀 생긴 거 같은 기분이 들어. 기분 탓일지도 몰라. 왜냐면 그 거울이 조금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서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거든. 어쨌든 나는 운동이 즐거워지는,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야. 목표인 6개월을 꾸준히 하고 내 몸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게 된다면 유튜브 속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치킨 기프트콘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구독과 좋아요 그 이상의 것을 해드리고 싶거든. 그분이 아무리 직업이 트레이너라고 해도 치킨을 안 먹고살 수는 없을 거야, 분명.


나의 일과에서 시호가 낮잠을 자거나 혼자 잘 노는 시간엔 티브이를 자주 보는데, 방구석 1 열이라는 프로그램 알아? 난 원래도 영화 소개해주는 프로를 좋아하는 편인데 '출발! 비디오 여행'과는 다르게 결말도 다 알려주고(출발! 비디오 여행은 뭔가 애매해. 영화를 보자니 대충 내용을 아는 거 같고 그렇다고 안 보자니 결말이 궁금하단 말이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잖아. 한 편의 영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 기분이 들어. 근데 최근에 '파리넬리'라는 영화를 소개해줬는데 너 혹시 봤니?? 오페라 영화인데 너무 감명 깊어서 너랑 이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고 싶다. '카스트라토'라는 오페라 가수의 이야기야.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오기 전에 거세를 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미성으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오페라 가수야. 남자인데 여성 소프라노의 음역대를 노래하는 거지. 고작 TV를 통해서만 감각하는 노래인데도 너무 아름다웠어. 그런데 영화 소개가 다 끝나고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건 무엇보다도... 거세를 하면 변성기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너무 놀랍지 않니? 변성기는 성기 때문에 오는 거였나 봐!!!!!(내 나름의 언어유희야.. 변성기의 '성'은 성대를 뜻하는 거더라)


그나저나 넌 요즘 네이버 블로그엔 왜 일절 글을 쓰지 않는 거야? 난 그래도 블로그가 내 마음의 고향 같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쓰기엔 브런치보단 마음이 편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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