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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y 22. 2020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치앙마이 2018



오늘은 꽤나 바쁘다. 숙소도 옮겼고, 동네 산책도 했고, 일도 했다. 저녁에는 치앙마이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다. 도이수텝이라는 산속 사원인데, 치앙마이의 야경을 보기에 좋은 곳이라고 해서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예약했다.

 

외쿡인 여럿과 함께 봉고에 올라타 왓우몽으로 향했다. 가이드에게 "우린 왓우몽엔 또 오는 거니, 따로 있을게, 좀 있다가 다시 만나자."라고 대충 영어로 손짓 발짓하며 의사를 전달하고 친구와 둘이 사원 밖을 산책했다.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사진도 찍고 놀았다. 다시 오니 또 좋다. 생소한 곳이 익숙해지려면 한 번보다는 두 번이 좋다. 익숙함에, 소소한 예쁨이 눈에 들어오니까 말이다. 치앙마이에서 익숙해지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이다.


왓우몽에서 2-30분 정도를 달려 도이수텝에 도착했다. 도이수텝을 가는 길은 잘 닦여진 임도길로 뱅글뱅글 돌아서 도착한다. 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꼭 멀미약을 챙겨야 할 정도다. 가이드가 출발 전 말했다.

"a lot of corner!" 다행히 난 멀미가 뭔지도 모르는 복덩이다 훗.




도이수텝은 산 정상에 있는 황금사원이다. 곳곳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초에 불을 붙이고, 돈을 내고, 절을 하는 공간. 사원을 한 바퀴를 돌며 기도하기 좋아 보이는 공간에서 절을 하고 기도를 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도 많이 가봤고 템플스테이도 해봤는데, 정작 절을 몇 번해야 하는 건지 몰라서, 어느 불상 앞에선 두 번, 다른 불상 앞에서는 세 번을 했다. 뭔 상관이겠나, 부처님이 너 왜 절 세 번 했어!라고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가이드가 우릴 불렀다.
"이 분은 이 사원의 구루님이세요, 여러분들에게 행운을 주실 거예요."
이리 와서 앉으라고 하시더니 머리에 물을 뿌리고 대나무 같은 걸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돈 내놔, 뭐 이런 의미인가?)
-
그러더니 뭐라고 주문을 막 외웠다.
(뭐지.. 기.. 기도 해야 하는 건가? 이때부터 진지해짐...)
-

도.. 돈을 내야 하는 걸까? 주머니에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봤다. 돈은 받지 않는단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마지막 한마디를 알아들었다.


Good Luck!


공짜로 행운을 받아버렸다. 팔찌를 팔아먹으려는 속셈일까 잠시 의심했던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사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뷰포인트로 올랐다. 저녁 늦은 시간인데도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너무 고요하다. 개구리 소리, 잉어가 첨벙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저 멀리서 들리는 목탁소리. 어쩜 이렇게 고요하지? 주변을 둘러봤는데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 많은 중국인들도, 투어를 함께 온 모녀도, 그저 바라볼 뿐. 각자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소원을 빌지도 않았고, 그 어떤 생각을 해보려 하지도 않았다. 상처가 난 연애들을 억지로 떠올리거나 떨쳐버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돌아가서 맞이해야 할 불안함도 걱정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고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두었다. 치앙마이에서는 그저 나 자신이고 싶었다.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일 때,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점점 치앙마이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들과, 방심하면 달려드는 모기들과, 뜨거운 태양과도 익숙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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