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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Jun 07. 2020

또 올게, 치앙마이 2018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4년째다. 서른이 시작되면서 나는 자유를 갈망했고 보통의 또래들과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이후로 고생스럽고 자극적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땀 흘려야지만, 젊음을 다 산화시켜야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남을 것만 같았다. 1년 반을 통영에 머물 때에도 혼자서 하와이에 아름다운 해변에 텐트를 치고 잠들 때에도, 북유럽을 돌며 행복지수를 온몸으로 느낄 때에도 여행 동안 스스로에게 변화를 원했다. 여행이 끝난 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다.
치앙마이는 조금, 달랐다.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나아지려고 하지 마, 넌 지금으로도 충분해. 이미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란 거, 증명되었잖아.


자꾸 더 나은 내가 되려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늘 겁에 질려있었고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에 망설임을 느꼈다. 치앙마이에서 머물렀던 호텔 수영장에서 개헤엄을 치면서 깨달았다. (조금 더 멋진 곳에서 예쁜 모습으로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가 물었다.


"너 수영 잘하네? 왜 여태 못한다고 했어?"
"난 사람들이 어설픈 내 모습을 보고 비웃는 것 싫거든. 못하는 걸 보여주기 싫어, "

나는 참, 부끄러운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 못할 수도 있고 무서워서 소리를 지를 수도 있는데.
그걸 못 견디게 싫어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다.(너무 허점이 많은 사람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면 얼마나 피곤한지 체감했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다는 생각을 못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자격지심 덩어리였다. 나는 또 이렇게 한 계단을 올라선다.




치앙마이는 완벽했다.



적당히 더웠던 온도, 적당히 서늘했던 밤공기, 친절한 사람들, 너무 저렴한 물가, 바퀴벌레 국물을 마신 재즈클럽마저도 완벽했다. 열흘을 머물렀지만 너무 짧다고 느꼈다. 왜 치앙마이를 '한달살이' 하기 좋은 곳이라 평하는지 알았다. 치앙마이엔 특별히 관광지가 없다. 유럽처럼 매일 바쁘게 돌아다닐 만큼의 관광을 할 거리가 없다. 발 디디는 모든 곳이 관광지다. 모든 문화가 태국스럽다. 여길 가도 사원, 저길 가도 사원, 이리 봐도 야시장, 저리 봐도 야시장이다. 지루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관광객은 시시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시시하고 지루했다. 그래서 치앙마이는 더 완벽했다. 지루하기 때문에 호텔에서 늘어지게 쉴 수 있고, 시시하기 때문에 두 번, 세 번을 다시 들러보고 싶었다. 

치앙마이 여행패턴은 늘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맥주를 마셨다. 해가 뜨거운 시간을 피해 4시가 넘어야 화장을 하고 외출을 했다. 보통의 여행처럼 텐트를 이고 힘겹게 걷는 일정도, 혼자 두려움에 떨며 잠드는 일도 없었다. 그저 보통의 여행을 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는 보통의 관광지를 가고 다들 맛있다는 맛집에 들러 밥을 먹었다. 특별히 맛이 좋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맛이 없지도 않았다. 엄청나게 싼 물가 하나만은 특별했다.







여긴, 꼭 다시 오고 싶어.




어느 나라건, 어떤 도시건 여행 후엔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 생각한다. 후회가 하나도 남지 않는 여행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자연을 담아보려 했고 멋진 사진도 많이 담아가 한국에 돌아가서 잊지 않으려고 애써봤다. 그런데 치앙마이는 조금 달랐다. 후회가 남아서도 아니고 자연이, 음식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다시 오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다시 오고 싶다. 다시 온다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그건 여행지에 대한 설렘도, 호기심도, 그리움도 아니었다. 편안함이었다. 치앙마이는 편안했다. 그 어떤 여행보다 따뜻했고 안심되었다. 늦은 밤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좋을 만큼 안전했고, 나의 짧은 영어도 잘 통했다. 간간히 한국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배낭여행을 떠나온 여행자들이 꽤 많이 거리를 활보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떠나온 건 나뿐이 아니구나 라는 어떤 안도감. 나를 완벽한 타인으로 보지 않는 그곳 사람들의 시선이 좋았다.

여행을 떠나와서도 외롭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치앙마이에 꼭 다시 오고 싶다.
그런 여행이었다. 안도감을 주는 편안한 곳.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치앙마이 여행기를 마무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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