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과테말라로
채리에게
오랜만에 쓰는 답장이야. 네게 답장을 받은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고? 말도 안 되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어. 요즘 하고 싶은 게 많다는 채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신선한 자극들을 찾아보았는지 궁금하네. 인스타나 블로그로 소식을 종종 접하고 있으니 외국어 공부는 여전히 꾸준히 하는 것 같더라?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나 습득력은 정말 타고나야 하는 건지, 몇 개의 언어를 하는 거니 너... 너만 데리고 다니면 전 세계 어디든 여행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 같아. 실제로도 우리 몽골에 갔던 5명 중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는 사실 알고 있어? ㅋㅋㅋ 근데 내가 대장이었어. ㅋㅋㅋ 대장은 영어 못해도 되더라. 팀원이 잘하면 되지. 그게 진정한 리더의 참모습 아닐까^^ 몽골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여행 이후로도 우리는 꾸준히 같은 얘길 했겠지만, 멤버들이 참 좋았어. (물론 그 이후로 인연이 다 이어지진 않았지만) 모두들 여행 꽤나 해봤다는 5명이 모였고, 다들 배려심도 좋고, 여행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었으니까 말이야. 언제 또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 우리 모두에게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마스크 없이, 팬데믹에 대한 공포 없이, 타국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언제쯤 올까. 휴.
우울한 얘긴 그만하고 지난 한 달간 나의 소식을 전해볼게.
아주 심플했지. 일과 손님. 지방에 살다 보니 친구들이며 가족들이 종종 놀러 오는데 남편 손님과 가족, 내 손님과 가족 이렇게 따로 오니까 거의 매주 주말마다 손님이 왔다가곤 해. 남편 친구들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도 왔다 갔다 했고. 그러다 보니 평일엔 더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며칠 쉬려면 어쩔 수 없거든) 이 것이 반복되다 보니 한 달이 금세 지나가버렸어. 하루하루는 또 어찌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지,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고 일하고 저녁먹고 일하면 자야돼 ㅡㅡ;; 어쩌면 시끄러운 도시와 잡음 많은 사람들 틈을 피해 내려와 있는 이 곳에서 우리는 더 바쁜 것 같아. 예전 같으면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 이제 그만 좀 만나고 싶다. 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과 다르게 또 만나고 싶다. 또 놀러 왔으면 좋겠다. (또 같이 술 먹고 싶다) 생각을 많이 해. 정말로 나를,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불필요한 관계가 없으니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세이브 되는 느낌이야.
그리고 다음으로 일얘기! 4월 말일에 공모전 접수를 마쳤고 5월 중에 발표가 난다는데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여전히 나는 등단이라는 막연한 로망이 있으니 올해는 단편소설을 써서 신인 문학상에 도전해보고 싶어. 강원도에 이사올 때 그런 계획이 있기도 했고. 그런데 정작 이사 온 뒤 6개월째가 되었는데 소설은 쓰지 못하고 있어.(돈 많이 주는 디자인일 때문..) 이번 공모에 낸 소설은 작년에 쓴 소설이야. 감사하게도 이 작품으로 작가 에이전시 계약도 하게 되었고, 이후로 대본 작업도 하게 되어서 이젠 정말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 출판을 위해서 여러 출판사와 접촉했어. 그런데 한국 출판 시장의 성격 탓인지 엔딩이나 내용 수정을 요청해왔어. 신인작가에 소설가 등단을 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용이 조금 더 자극적이거나 혹은 메시지가 더 필요하다는 거지.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결혼을 당연한 듯 생각하며 살아온 한 여자가 프러포즈를 받고 난 후, 자신이 지금 원하는 건 결혼이 아님을 깨닫고 남자와 이별해. 그 과정 속에서 비혼 주의자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인데. 이 소설의 포인트는 '평범한 사람들'이야. 요즘은 티브이에서도 비혼 주의자가 많이 나오고, 특별하게 자신의 소신을 잘 밝히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하지만 어쩌면 비혼 주의자도, 그렇다고 결혼 예찬론자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야. 어떻게 보면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결혼을 꼭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그러니까 별다른 교훈도 메시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모든 작가들이 한 번은 쓴다는 자전소설이야. (ㅋㅋ)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는 비혼 주의자에 포커싱을 맞춰야 책이 더 잘 팔릴 텐데... 했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설과 지금 쓰는 대본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올해 내 목표이자 소망이야.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 예전에는 글을 쓰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니 수입이 생기면 좋겠다로 생각이 바뀌는 거야. 그러다 이제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인정이 받고 싶더라. 쓰고 있는 글을 빨리 세상에 내놓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많이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고, 얘기해줬으면 좋겠고, 악플이라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ㅋㅋ 아무쪼록 올해는 뭐라도 세상에 빛을 보여주길 목표로 잡았으니 그날이 올 때까지 부지런히 쓰는 수밖에. 그래서 공모도 해보고 싶었던 거였어. 뭐라도 상을 받은 작가다 하면, 누구 하나라도 더 뒤돌아봐줄까 하는 생각에.
오늘은 어버이 날, 시호는 엄빠에게 이른 육퇴를 선물해주려나 :)
오늘은 시어머니가 온다고 해서 남편이 먹고 싶은 족발을 사 먹을 예정이야.(??) 원래 부모란 게 그렇잖아. 자식이 먹는 거 보는 게 행복하고 배부르고 뭐 그렇지 않나? 아, 채리는 아닌가... (ㅋㅋㅋㅋㅋㅋ)
이번 달은 가정의 달이니까, 채리의 가정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한 달이 되길 바랄게.
나는 답장이 많이 늦었지만 너는 좀 빨리 써다오. ^^ (약간 양심 없는 타이푸)
그럼 이만!
PS. 시간 날 때 빠른 답장 좀.
강원도에서 도연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