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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Aug 23. 2021

결혼식보다 혼인신고에 로망이 있는 편

비혼 엔딩_6

살아보고 일 년 후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결혼식 보다, 신혼집 계약보다 혼인신고를 먼저 한 성질 급한 부부, 여기 있어요.



우리는 모두의 우려 속에 결혼을 했다. 연애 8개월 만에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그래서인지 "나 결혼했어!" 하고 말하면 대부분은 "임신했니?"라고 물었다. 모두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혼인신고를 서두른 건 아니었다.


사회에서 만들어준 암묵적인 규칙을 따르는 게 어쩐지 싫은 청개구리 같은 나는 살아보고 일 년 후쯤 혼인신고를 한다는 결혼 문화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그런 식의 결혼은 싫었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깨지는 부부. 10년을 연애했는데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지는 부부. 결혼식은 양가 어른 모두 합의하에 아파트까지 구매해 결혼생활처럼 지내다 헤어져버린 커플...처럼 세상엔 정말 다양하게도 깨지는 부부나 커플이 많다.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산산조각 나고 골치 아프게 끝나는 관계. 부동산을 청산해야 하고, 통장을 분리해야 하며, 쓰던 가구 가전, 심지어 같이 기르던 반려견까지. 누가 가져가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헤어지고 나서도 합의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애석하게도 난 합의가 아닌 소송까지 간 막장 이혼가정의 막내딸이라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피곤하고 상처를 남기는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상처가 두려운 건지, 아니면 자신의 삶에 오점이 남는 게 싫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가족관계 증명서에 상대의 이름이 남지 않는다고, 그렇게 아무것도 없었던 일처럼 되는 건지. 


이만큼 살아보고 서류상으로도 가족이 되어도 되겠다. 하자가 없는 인간이구나, 이 결혼은 깨질 일은 없겠다 싶을 때쯤 도장을 찍는 거 아닌가. 혼인신고는 대부분 결혼식보다도 중요하고 신중해야 할 결정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혼인신고라는 결정을 가장 먼저 한 거다. 이제 이 사람은 나의 배우자가, 나의 가족이 된다. 하는 결정. 지금도 우리 부부는 가끔, 우리의 미래를 비난하는 이들을 종종 마주친다. "왜 그렇게 성급한 결정을 했어, 연애도 짧고 살아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해서 이혼을 하면 어떡하니. 너희들은 너무 경솔하다고." 그렇게들 중요하다는 혼인신고를 우린 먼저 했고 법적으로도 부부가 되었는데 왜 경솔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결정을 가장 비중 있게 생각하고 가장 먼저 했는데.


이 사람이라면 나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쓰레기가 아닐까? 아무리 고민하고 검증하고 살펴보면 뭐하나, 쓰레기가 나 쓰레기요~ 하고 얼굴에 써붙여놓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2년 3년 사귀면 알 수 있나? 그건 또 아니었다. 수년을 만나도, 몇 달을 만나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믿음 그거 하나였다. 서로의 믿음 말고, 나에 대한 믿음. '내가 선택한 남자'에 대한 내 선택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이 남자와의 미래를 유지할 나에 대한 믿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웨딩드레스 입고 소위 말하는 버진로드를 걷는 일보다, 혼인신고를 하러 들어가는 동사무소 복도가 더 설레고 기다려졌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미래를 약속하고, 박수를 받는 일보다 둘이서 약속하고 서로가 증인이 되는 일이 결혼식보다 먼저 해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결혼식은 안 해도 그만이지만 혼인신고는 안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보고 결정하겠다는 식으로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결혼했으면 빼박이고, 정말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관계가 틀어져 이 결혼이 깨지더라도 그 책임은 달게 받겠다는 다짐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빨간 줄 그어진 채로 살겠다고. 그것이 내가 한 결정에 대한 책임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요즘 세상에 무슨 흠이냐고. 물론 여전히 보수적인 세상과 시선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그것 마저 감내해야 하는 것,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 결혼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니까 연애 짧게 해 놓고 혼인신고 먼저 했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렇게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혼인신고가 두려웠다했다. (주변 친구들이나 형들이 극구 말렸나 보더라)

나는 혼인신고 안 하고 둘이 살 거면 동거나 다름없다 생각하고, 그건 내가 원하는 결혼이 아니니까 너랑 같이 살 이유가 없다. (쫄 리면 뒤지시든가)라고 했더니 혼인신고 안 하면 헤어지자고 할까 봐 무서워서 사인했다는 후일담... 뭐 지금은 너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여자 말은 들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고. 


여러분 혼인신고는 신중하게 하세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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