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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Sep 09. 2021

스무 번째이사

스무 번째 이사

 가끔씩 어릴 때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이사를 수도 없이 다녔는데, 문득 이번이 몇 번째 집인지 궁금해졌다. 짐을 싸고 풀었던 횟수만 세어보니 스무 번째 이사였다. '집을 옮긴다'라는 기억이 있는 10살부터 세었는데도 20번이 넘다니! 1년 3개월 꼴로 이사를 한 셈이다. 이렇게 이사를 많이 했지만 지나온 집들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열쇠를 안 가져온 날이면 담을 휙휙 넘던 낮은 담이 있는 주택, 영화 기생충에 나올 법한(구조가 정말 똑같다) 반지하 주택, 무려 여자 4명이 함께 숙식을 했던 복층 오피스텔, 동거인과 정말 재미있게 2년을 살았던 망원동 집까지... 다양하게들 꿈에 등장해주신다. 살았던 집뿐 아니라 이사에 대한 재미있는 기억도 많다. 야반도주하는 사람처럼 박스 두 개, 강아지 한 마리와 늦은 밤 도둑처럼 이사를 한 적도 있고, 아끼던 그릇이나 컵들을 포장해 택배로 보냈다가, 산산조각 나버린 유리조각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럴 때면 ‘하, 정말 이놈의 이사 지긋지긋하구나’ 생각했다. 심지어 아끼던 책들은 대구, 통영, 서울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어 이젠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이사를 수없이 다니면서 이사가 싫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이젠 삶의 터전을 이동하는 걸 좋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잃어버린 물건도, 버린 물건들도 많지만, 지난 나의 세월들과 추억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으니까.


 가끔은 예전 그곳을 다시 한번 가보고 싶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살았던 집과 이삿짐을 싸고 풀던 기억들을 묶어보려 네이버 지도를 켜고 거리뷰를 켰다. 맙소사. 내가 키가 크고, 생각이 자라고, 외모가 변한 것처럼(저자는 의학기술의 도움을 조금 받음, 하지만 그다지 나아지진 않음...) 동네는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살았던 집 위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동네가 통째로 재개발이 된 것인지 아니면 기억에 오류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추억할 곳이 없어져버려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내가 살았던 때와 똑같은 빨간 벽돌의 빌라 그대로 생생하게 보였다. 새로 생긴 맞은편 편의점, 부동산들이 깨끗하게 바뀌긴 했지만 건물은 그대로였다. 벌써 2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마치 20년 전의 내가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이사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집이 없는 설움이기도, 내 집이 없는 자유로움이기도 했다. 2년마다 집을 옮기는 일이 새로운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사가 점점 익숙해졌다. 비 정착형 삶에 적응해버려, 때가 되면 늘 새로운 공간을 원하는 정서가 만들어졌고, 정착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잔잔한 안정감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그러다 평생을 같은 동네에서 자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자는 경험이 많은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고, 나는 한 자리를 지킨 남자가 믿음직스러웠다. 남자는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나고 싶어했고 나는 평생 살 동네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동거인과 앞으로는 어떤 집이, 어떤 생활이 날 기다릴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집들, 이사의 순간들, 그리고 함께 살던 사람들, 지나간 동네를, 시간을, 세월을, 추억해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당신들을 지나간 집들과 이사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기를.


2021. 강원도 인제 집에서.




* 이사에 대한 이야길 연재해 브런치 북으로 만들예정이에요. 천천히 올라오겠지만, 재미있게 봐주세요 :)

* 타이틀 사진은 19번째 성산동 감나무집에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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