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연 Sep 10. 2021

이사의 기술

스무 번째 이사

성인이 된 이후, 그러니까 대략 17년 동안은 혼자 이사를 다녔다. 가족들이 도와줄 때도 있었고, 남자 친구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 마저도 없을 때가 많았으니, '나 홀로 이사' 업계에서 초짜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17년 동안은 10번이 넘는 이사를 했는데 동네에서 동네로 이사를 하거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하며 습득한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실용성은 없을 수 있다. 아니, 없다.



 첫 번째. 최소비용으로 저효율과 교훈까지 얻는 방법.

 5만 원의 용달차와 운전해주시는 기사님 비용 내기. (지금은 시세가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 라떼만 해도 서울의 같은 마포구 내에서는 5만 원이었다. 필요에 따라 도움 주시는 분을 1~2명 요청할 수도 있다.) 풀옵션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 이동시킬 가구나 가전이 없기 때문에 일꾼 없는 이사가 가능하다. 같이 사는 친구가 있다면 같이 사는 친구와 둘이 이사를 할 수도 있고, 남자 친구가 있다면 남친 찬스를 쓰면 된다. 이따금 여자끼리 이사하는 게 안쓰러운지 '좀 도와줄까?' 하는 기사님이 가끔 계신다. '감사합니다!' 하며 호의를 넙죽 받으면, 결국 집으로 돌아갈 땐 돈을 더 요구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는 귀한 교훈까지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29살에 함께 살던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 집을 분리했다. 혼자 이사를 하게 된 처제가 안쓰러운 형부가 오전에는 처제인 나의 이사를 돕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신혼집 이사를 하는 식으로 이사를 했다.(아직도 형부랑은 이때 이야길 한다. 울 형부 하루에 두 탕 이사, 엄지 척!) 이사가 너무 바쁜 탓에 침대가 조립이 안된 채로 이사를 마치게 되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니, 혼자 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침대는 또 왜 하필 퀸사이즈인 건지. 그때 마침 같은 동네의 지인 부부가 감사하게도 흔쾌히 도움을 주러 왔다. 부부는 도착하자 침대 조립을 오분만에 마쳤다. 그리곤 짜장면을 좀 시키라고 하더니 짬뽕에 탕수육까지 야무지게 얻어 드시고 갔다. 도움을 주었으니 고맙지만 오분에 삼만 원을 썼으니 역시 이사는 여러모로 교훈을 남기는 일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직장동료나 친구들을 불러 이사를 하는 방법은 비추다. 뿐 아니라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정리 안된 낯선 공간에 남는 일이 나의 경우 썩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밤이 오면 외로움이나 쓸쓸함, 두려움까지 복합적으로 찾아와 날밤을 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새로운 집에 낯섦을 털어내고 내 공간으로 만들려면 정리는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다.



두 번째. 지인 찬스를 써서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내는 방법. 길게 보면 마음의 빚이 1톤 트럭쯤 생긴다.

 특별한 인맥이 많은 경우라면 이 방법도 좋다. 지인 중 큰 차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친구가 힘 좀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감사한 일!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학교 뒤 작은 마을에서 자취를 했다. 고향집에 있는 침대를 자취방에 옮겨 놓아야 했는데 마침 일찍 취업을 한 친구가 트럭이 있어서 이사를 도왔다. 벌써 20년이 가까이 된 기억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침대를 옮겨준 걸로 기억한다. 밥은 사줬는지, 제대로 빚은 갚았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벌써 15년은 된 이야긴데도 나는 아직 그 친구를 생각하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에는 이렇게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고, 그리고 도움을 받기도 쉬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고 해도 잘 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부탁을 들어주는 건 쉬운데, 부탁을 하는 일은 참 어렵다. 돈을 빚지는 것보다 마음의 빚을 지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잘 알아서. 정확한 원금도, 만기일도 없는 빚이라니. 평생 마음으로 밖에 갚을 수 없으니 쉽지만 어렵다. 이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관계 속에서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 번째. 이사를 택배로 했어요.

 이 방법은 지방을 자주 다니며 이용한 방법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삶'을 지향하면서 물건을 팔아버리거나 다음에 이사 오는 사람에게 넘기거나 하면서 짐의 부피를 줄이고 이동했다. 뭐라도 사고 싶을 때는 자연스럽게 '다음에 이사할 때 짐이 되면 안 되니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욕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고 그러면서 옷도 신발도 많이 정리했다. 여름엔 조리, 겨울엔 운동화 1-2켤례, 경조사에 필요한 구두 1켤례 정도가 신발장 속 신발의 전부다. (옷은 좀 남겼다) 그리고 캠핑용품 몇 가지들. 이 와중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책과 식기들이었다. 책과 식기들은 우체국 택배의 규격 박스에 넣어서 고이고이 잘 보냈다. 이사를 하느라 경황이 없어 택배 기사님의 노고까지 헤아리지 못했는데, 새로운 집에서 택배를 받을 때 기사님이 박스를 내려놓으며 허리를 부여잡는 모습을 보고, 다음부턴 꼭 더 작은 박스에 넣어서 부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기를 택배로 받을 땐 반대로 기사님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박스의 테이프를 뜯는 순간 아끼던 식기가 몽땅 다 깨져서 도착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가 캐나다를 다녀오면서 사다 준 스타벅스 1호점 머그컵도 깨져버렸고, 첫 싱글라이프를 자축하며 사들였던 파스타 접시며 술잔들도 모두 깨졌다. 깨짐 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나름대로 포장을 한다고 했지만 물류센터 2곳 이상 들러 오는 지방으로의 택배는 아무래도 위험한 모양이었다. 뽁뽁이 9 : 그릇 1 정도의 비율이면 가능했으려나... 아니다. 어쩌면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한동안 미니멀 라이프를 더욱 실천하게 되었으니까. 지난 일 후회해봤자, 깨진 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행복 회로라도 돌리자. 아무튼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내가 제일 추천하는 이사 방법은 바로 포장이사다!



 마지막. 돈이 최고시다. 포장이사 적극 추천

 이사는 품이 많이 든다. 돈과 시간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얇아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특히나 혼자 이사를 할 때엔 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진 게 맞는지, 혹시나 재수가 더럽게 없어 사기를 맞은 건 아닌지 별 걱정이 다 든다. 짐과 몸을 모두 새로운 집에 들여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게다가 한 집에서 쭉 살았더라면 쓰지 않아도 될 돈도 많이 쓰게 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 이사 업체 비용, 기존 집에 쓰던 커튼이나 블라인드, 가구 같은 것들은 이사 가는 집에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새로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를 한 이후에도 돈은 꾸준히 세어나간다. 집들이 명목으로 마시는 술값도 만만치 않다. 마음먹고 저렴하게 이사를 하려면 할 수 있다. 우선 방 구하기는 직거래 카페를 이용하면 된다. 거래는 직거래로 하더라도 계약서는 부동산에서 쓰는 게 안전하다. 동네 부동산에서 계약서 대필료를 지급하고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쓰는 게 좋다. (큰돈이 오가는 전세나 매매보다 나 홀로 족 월세에 맞춰진 이야기) 계약서 대필료가 부동산마다 다르겠지만 평균 10만 원쯤. 그리고 용달료 정도면 이사가 가능하지만, 직거래는 괜찮은 집이 정말이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수준이다.* 

 

 결혼 전 마지막 이사는 망원동에서 성산동이었다. 방 2개에 거실, 주방. 욕실. 웬만한 가전 가구는 모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살림'이었다. 용달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돼서 동거녀과 포장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집과 이사 가는 집의 구조가 다른 만큼 가구 배치나 짐이 들어가야 하는 곳은 미리 정해뒀고, 속옷처럼 누군가 보는 게 싫은 물건은 미리 박스에 넣어 테이핑 했다. 남자 세분, 여자분 한분이 오셔서 일사불란하게 이사를 시작했다. 여자분은 주방에 자리를 잡고, 냉장고에 있는 물건들을 아이스박스에 옮겨 담고, 컵이나 접시는 신문지와 뽁뽁이 같은 것들로 하나하나 포장해주었다. 남자들은 냉장고, 세탁기, 침대, 책상 같은 것들을 초고속으로 분리하더니 사다리차를 이용해 1층으로 속도감 있게 내려놓았다. 초여름 이사라 모두 덥고 지칠 만도 했는데 이사업체 분들은 친한 친구처럼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일했다. 새로 이사하는 집 앞에 사다리차가 도착하자, 이사업체 분들은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시간이라며 모두 식당으로 갔다. 마침 근처에 내가 운영하던 카페가 있어 그리로 모셔서 커피도 한잔씩 모두 대접했다. 그리곤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포장해놓은 짐들을 마치 원래 살던 집처럼 맞춰 넣기 시작했다. 친구 방에서 가져온 짐, 내 방에서 가져온 짐을 분리해서 넣어주고(내가 말하지 않아도!) 냉장고와 싱크대는 기존보다 더 정갈히 정리해주셨다. 옷방에 옷은 내가 맞추고 싶은 배열은 아니지만, 바지는 바지, 아우터는 아우터 대로 분리하여 걸어주었고, 신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청소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모르는 사람 여럿이 집으로 들어와 내 옷이며 가구를 헤집고 소복이 쌓인 먼지를 보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반성한다. 모두들 내 짐을 조심스럽게 옮겨주었고 그 누구도 어느 하나 막대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좋은 업체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겠지만 다음에도 나는 포장이사를 이용해야겠다 결심했다. 물론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앞에서 겪은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 그릇이 깨지거나 용달 기사님과 큰소리가 오가는 일이 없고, 이사가 끝난 후에도 정리할 생각으로 끔찍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하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니까 이 긴 글의 끝에는 결국 포장이사가 최고라는 명쾌한 해답을 내려본다.. 자본주의 짱. 오늘도 포토샵을 켜 돈을 번다.






"비용 든다고 안 하셨잖아요" 눈에 쌍심지 키면 싸움으로 까지 번져 "나이도 어린 계집애가 싹수가 없다"라고 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아름 다운 법, 진짜 안쓰러움에 도와주시는 천사 같은 분들도 많다.

 보통 계약 만료 전에 나가게 되거나, 혹은 부동산에서도 매물이 잘 안 나가는 경우 직거래 카페까지 올라오기 때문에 괜찮은 매물이 드물다.

작가의 이전글 스무 번째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