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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Sep 19. 2021

잘 풀리는 집

스무 번째 이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동 202호

"여기 살던 사람 다 잘돼서 나갔어!"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는 날, 주인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이다. 2017년 민철이*와 망원동으로 살림을 합쳤다. 핫플레이스인 망리단길과 망원시장이 3분 거리, 한강공원으로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던 위치는 최고인 집이었다. 2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오래된 빌라지만 집 내부가 비교적 깨끗했고, 샷시도 잘 되어 있었다. 바로 위층에 건물주가 함께 산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지만, 민철이와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건물주 어머니는 망원동에서 20년을 넘게 터를 잡고 오래오래 살았기에, 어쩐지 따뜻하고 안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마주칠 때마다 쓰레기를 치우라거나, 친구들 좀 그만 오라고 하라거나, 개가 시끄럽다거나 하는 잔소리가 일절 없는 좋은 건물주였다. 덕분에 우린 계약된 2년을 꽉꽉 채워 살았다. 하지만 계약이 만료될 때쯤 민철이와는 이사를 계획했다. 위치가 너무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해가 잘 들지 않아서 빨래를 널 때마다 아쉬웠다. 그래서 해가 잘 들고, 테라스가 있어 빨래를 볕에 널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금세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3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오래된 주택인데 베란다가 넓고 단독으로 옥상을 쓸 수 있는 2층 집이었다. 1층에 큰 감나무가 심어진 감성이 있는 데다가 현관, 큰방, 작은방 모두 해가 들어오는 동쪽에 있어 집이 언제나 환하고 밝다는 점이 좋았다. 해가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집에는 곰팡이와 싸울 일도 없고, 빨래에 섬유 유연제를 들이부을 일도 없다. 우리는 이사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사를 나가던 날, 어머니는 물었다.


"더 살지~ 왜 이사를 가. 아가씨들 이제 못 본다니 아쉽네."

"저희, 강남으로 이사 가요. 직장도 그쪽이고 잘 돼서 이사 가는 거예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고 거짓말을 한 건 의도적이었다. 이사 가는 집은 사실... 10분 거리의 성산동이었다. 둘 다 출근하는 직장 같은 건 없는 프리랜서였다. 다음으로 이사 오는 사람에게도 어머니는 말하겠지, 여기 살던 아가씨들 일이 잘 돼서 강남으로 이사 갔다고. 그러니까 이 집은 일이 잘 풀리는 집이니 안심하고 오래오래 살라고 말이다. 건물주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이상하게 울컥했다. 2년을 울고 웃으며 잘 살았던 내 집에서 살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건물주 어머니 가족 모두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 집은 내가 들어와 많이 손질해 놓았으니 누가 와 살더라도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남의 집이나 내 집이냐를 따질 것 없이 어떤 인연에서건 일단 내가 몸담아 살게 된 집은 내가 손질하고 보살펴야 한다. 그것이 집에 대한 사람의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한때나마 수행자가 머물다 간 집은 세속의 가옥과는 달리 그가 떠나간 후에도 맑은 기운이 감돌아야 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스님 -






* 민철이(가명)는 망원동에서부터 감나무집까지 4년을 함께 동거 동락한 나의 동거녀이자 뮤지컬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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