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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 Mar 09. 2022

봄, 새로이 시작하는 봄.

강원도에서 과테말라로

채리에게


오늘은 3월 9일,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세탁방에 가서 빨래를 하고 읍내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에 들러 투표를 하고 왔어. 오늘 낮 기온이 15도나 되네, 빨래를 오랜만에 테라스에 널면서 '드디어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봄이 되면 설레는 마음은 잠시, 날리는 꽃가루에, 미세먼지에 재채기하느라 정신이 없는 만성비염환자야. 며칠 전에 이비인후과에서 처방받은 약 덕분에 헤롱 거리는 정신을 부여잡고 오랜만에 찾아온 여유를 만끽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답장을 쓴다. 


2022년, 해가 바뀌었다고 답장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기분인데 벌써 3월, 시간은 내 맘과 다르게 왜 이렇게 빨리 달려 가는지 모르겠어. 해가 바뀌면 운동도 하고 책도 부지런히 읽어야지, 답장도 빨리 써야지. 하고 다짐을 분명했는데... 했는데... 했는데... (이만 줄일게 ㅋㅋㅋ) 

코로나는 한국에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지만 바이러스 자체는 약해져서인지 규제들은 점점 완화되고 있고,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야. 나도 내년에는 과테말라로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희망+계획을 가져보고 있어. 올 겨울에 채리네 가족이 한국으로 온다면, 그래서 네가 우리 집에 놀러 와 볼 수 있다면 우선 시호에게 겨울을 보여줄 수 있게 얼음 썰매를 타러 가고, 앞마당에 불을 피워서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자. 어른들은 조개구이, 삼겹살에 술을 곁들여 밤새도록 만나지 못했던 몇 년간의 이야길 하고, 술은 점점 취하고, 그리고 집래방에서 실컷 노래를 부르면... 시호가 깨겠네. (ㅋㅋㅋㅋ)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한다고 편지에 사진을 덧붙인 게 벌써 일 년도 훌쩍 지나서 올 11월이면 계약이 만기라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한데, 아직까진 마음의 결정을 내리진 못해서 일단 연장을 해서 사는 것으로 얘기해보고 있어. 이사를 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즐겁게 보내겠지? 우리 식대로 말이야. 그저 주어진 것에 적응하면서. 아무튼 돌아오는 겨울에는 채리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하고, 다시 만났을 때 엊그제 안녕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나의 지난 3개월에 대해서 얘길 해보자면, 참 별 것이 없었지. 텃밭도 휴식기를 취하는 겨울이라 더더욱 할 일은 없었네. 역시나 눈을 뜨면 일을 하고, 때가 되면 밥을 지어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덕분에 겨울 동안 +2kg ㅋㅋㅋ) 뭐 한 달에 두어 번 서울에 일 하러 가고...

인제 산골에 살면서 삶은 꽤 단순해졌어. 30대 초반에는 단순한 삶, 조화로운 삶, 작고 소박한 삶을 동경했어. 서울의 도시 한 복판, 작은 원룸에서의 매달 카드빚에 초조해하는 게 아니라 적게 벌어서 적게 쓰는 삶, 노동과 자유가 조화로운 그런 삶을 꿈꿨지. 어쩌면 서른여덟의 나는 그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네가 말한 서른여덟의 모양은 서른 살의 내가 꿈꾸고 동경하고,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리워하던 그런 모양인 것 같아. 그리고 이제 서른여덟의 나는 사십 대의 모양을 생각해. 삼십 대 보다는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사치를 부린다거나 입지도 않을 것, 쓰지도 않을 것, 먹지도 않는 것을 탐하거나 욕심내겠다는 게 아니고, 이제는 이사를 가거나, 엄마의 빚을 생각할 때나, 오래된 차를 바꿔야겠다거나 할 때 걱정을 덜 하고 싶다. 혼자서 살면서 부족한 카드값을 걱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스케일이 좀 더 커졌달까. 부모를 부양하고 가정을 책임지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돈' 걱정에서 이제 좀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그래서 앞으로는 야망을, 돈 욕심을 좀 가지고 살아보아야겠다고. 서른 여덟의 만족스러운 이 모양을 잘 유지하고 빚어서 사십 대의 모양도 지금의 내가 꿈꾸고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삶의 모양이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뭐, 안되면 할 수 없고. ㅋㅋㅋ


아무튼 다시 봄 얘기로 돌아가서, 올해 봄은 유난히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은 한 해 같아. 대통령도 오늘 이후로 바뀔 테고, 입학, 이사, 이직 등등 뭐든 새로이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잖아. 새로운 마음을 먹기도 좋은 계절이기에 나 역시 새로이 시작하는 일들에 대해 기대와 함께 열 일하며, 그렇게 보내려고 해. 다음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완연한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옷가지가 가벼워지겠지. 채리는 이 봄에 어떤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지내고 있을지,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 답장에서 전해주렴. 



과테말라의 진한 봄 냄새가 담긴 답장을 기다리며.

그럼, 시간 날 때 답장 좀.

강원도에서 도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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