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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채리 Feb 09. 2022

서른여덟의 모양

과테말라에서 강원도로

도연에게


정신없는 1월을 보내고서야 이렇게 느지막한 답장을 쓰게 되었어. 어느덧 이곳은 겨울이 다 지난 것 같은(연말은 이곳도 나름 쌀쌀한 시기이니까)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사실 뭐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이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두세 달은 니트 종류의 옷을 꺼내어 입었는데, 요 며칠은 그런 옷 보다는 가벼운 옷에 더 손이 가더라고. 


우선 지난 연말 여행 이야기부터 해볼까? 

있지, 사실 그곳은 아이와 함께 가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이곳 과테말라엔 Atitlan이라는 이름을 가진 퍽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엄청 큰 호수라서(뭐 세계 10대 호수 사이즈에 끼지는 못한다만) 바다인가? 싶기도 한 그런 호수야. 화산이 터져 만들어진 화산호인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2위라나 뭐라나. 여하튼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운 곳이지.

내가 예약한 숙소는 마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서 어느 산자락 절벽에 만들어진 곳이었어. 계단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아이가 아차! 하고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하면 저 세상 갈 거 같고 막 그렇달까.. ^^^^^^

그곳은 내가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곳이었지만, 위에 쓴 여러 요소들 까닭에 망설였지만 그냥 가보기로 했어. 소위 말하는 '아이 데리고 가기 좋은 곳'과는 거리가 먼 그곳은, 내가 원하는 곳이었으니까. 내 여행을 기억도 못할 아이에게 맞추고 싶지 않았어. 그리하여 그곳으로 연말 여행을 갔는데, 웬걸? 나는 시호가 다섯 살만 되면 산이고 바다고 어디든 데리고 떠날 수 있겠다, 확신이 들었다니까!!!! 배를 태웠는데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고, 내가 잡아주려니까 오히려 잡지 말라면서 내 손을 뿌리치더라고. 그리고 그 여행에서 시호는 '배'라는 말을 배웠지. 배가 지나갈 때마다 '대~' 이러는데, "시호야, 대가 아니고 배야"라고 몇 번 얘기해줬지만.. 아직 그 부분은 교정되지 않았다.^^^^^^^ 아이가 놀 게 너무 없으려나? 했지만 그 안에서 알아서 놀거리를 찾더라. 호숫가에서 돌을 던지고 놀고, 고양이한테 풀을 뜯어 입에 갖다 대며 먹으라고 하고..(토끼한테 먹이 줘봤던 기억을 바탕으로) 자쿠지 물을 떠다가 식물한테 온수 샤워를 시켜주더라고(그 식물 과습으로 죽진 않았을는지...).  우리는 그저 아이가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쓸 뿐이었지.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다. 어쨌든 나는 과거의 어느 여행길에서 마주한 유러피안 가족들처럼, 시호가 워커를 신고 배낭을 짊어 멘 모습을 상상하며... 한국 가면 쓰던 배낭이랑 워커랑 다 챙겨 와야지... 생각하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참, 한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올 연말엔 한국에 들어갈 거야.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사실 10개월 너무 금방이지 않니?????? 하루도 금방, 한 달도 금방이야. 전광석화 같은 날들 속에서 어쨌든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을 거라는 기대가 가득해. 과테말라로 이주해와서 정착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일 년이었어. 조만간 내 비자 문제도 해결될 예정이라 면허증도 함께 해결이 될 테고, 그래서 머지 않은 시일 내에 내 차도 구입할 예정이야!! 얏호!!! 


올해 지키고 싶은 나와의 약속들도 물론 잔뜩이야. 매년 빠지지 않는 운동!! 그놈의 운동 ㅋㅋㅋㅋㅋㅋㅋㅋ영 놓아버리지 않는 선에서 겨우겨우 지키고 있는 중이야.  또 올해는 블로그에 글을 좀 더 자주 남기기로 다짐했어. 길지 않아도 좋다 이거야, 일단 자주 쓰고 보자. 뭐 이런 마음. 이건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 기록에 대한 애착이랄까. 쓰지 않으면 날아가버린 것만 같은 날들에 대한 기록. 시시하고 별 것 없는 거 같은 나의 오늘들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고민해서 남겨두면 특별하고 근사한 오늘이 되는 것 같으니까.

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래! 스페인어 공부도 할 겸, 내 유튜브 영상에 스페인어 자막을 넣기 시작했어. 덕분에 편집하는 데 두 시간이 더 소요되지만, 이거 아니면 스페인어 공부할 시간을 따로 낼 것 같지 않기에... 계속할 생각이야. 바이올린 연습도 나의 매일에 꽤 활력을 주고 있어. 무용한 것들의 즐거움을 느낄수록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가 들어. 그건 아마도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밸런스를 잘 맞추고 있는 걸 테니 말이야. 


우리의 올 한 해는 어떤 모양일까?

열심히 주무르고 굴려서 우리가 원하는 서른여덟의 모양을 만들어보자 :)

그리고 그 해가 거의 끝날 무렵, 우리는 아마 서울이든 강원도에서든 푸짐하게 차려놓고 거나하게 취해있지 않을까?

서른아홉엔 과테말라에서 만날 기약도 해가면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연말에 다녀온 여행 사진을 첨부할게!

곧 강원도에서 따스한 봄이 오겠구나. 

그 전에....

너무 늦지 않게 답장을.. 염치없지만 바라볼게 ㅋㅋ


그럼, 시간 날 때 답장 좀.

과테말라에서 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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