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계약 성사 : 미친 실행력
서른넷에 드디어 사장님이 되었다. 언변이 좋아 사기꾼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거짓말도 꽤나 그럴듯하게 하는 편이다. 2018년 3월 1일,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들고, 사기꾼이 아닌 사장님이 되었다. 5월이 되자, 사무실이자 카페가 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잘 아는 동네, 익숙한 곳, 편안한 곳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제일 중요한 게 공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제일 중요하지 않은 게 공간이기도 했다. 반지하도, 2층도, 골목이라도 상관없다. 콘텐츠와 우리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집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으면 좋겠다. 노트북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하러 출근하면 좋겠다. 출근 길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혀야 하는 지하철이나 멀미 나는 버스를 타는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일 좋아하고 잘 아는 동네면 좋겠다. 퇴근을 하는 길엔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 빵도 사고, 작고 예쁜 숍들을 구경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서 집으로 올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자주 합정, 상수, 연남, 망원을 자전거로 돌며 '임대'가 붙은 상가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증금과 월세를 알아봤다. 기존에 카페 업을 하던 곳은 권리금이 높고, 상가가 아닌 곳은 공사비가 꽤 들 것 같았다. 마포구 곳곳의 부동산에 미리 연락을 해두고 괜찮은 공간이 나올 때마다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비싼 월세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월세도 적당하고 외관도, 내부도 마음에 쏙 들었다. 예상보다 평수는 좁지만 개인 갤러리로 쓰던 곳이라 천장, 바닥, 화장실까지 모든 공사가 되어있었고, 권리금도 없는.... 바닥, 천장, 조명, 화장실까지 모두 깔끔하게 공사가 잘 되어 있었다. 인테리어 비용이 없는 우리에겐 최상의 조건이었다. 사업을 시작한다고 큰 뜻을 품었지만, 현실의 내 그릇은 아직 작은 모양이다. 부담이 되지 않을 월세와 과감한 투자가 필요 없는 인테리어로 현실적인 합의를 했다.
요즘은 종종 시장조사로 요즘 핫하다는 카페를 방문한다. 원두도 좋고, 기계도 좋고, 다들 실력도 좋으니 커피 맛도 좋았지만, 공통된 이미지는 ‘공간들이 하나같이 이기적이다’라는 것. 자신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 그래서 철저히 자신들만의 취향을 따른 공간처럼 느껴진다. ‘여긴 스타벅스가 아니에요.’ 같은 느낌이랄까.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대부분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고객을 위해서 공간을 만들고 꾸미지만, 작은 카페들은 반대였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공간을 만들고 자신의 취향으로 공간을 꾸민다.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내놓고 자신의 취향과 멋을 알아주고 공유해주는 사람들을 손님으로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잘 나간다 하는 작은 식당이나 작은 카페들은 쉬는 날도 많다. 반드시 SNS에서 영업을 하는지 확인을 하고 방문해야 할 정도다. 자신들의 휴식이, 자신들의 시간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 매장을 찾는 사람들도 공간의 방식, 그 공간을 꾸리는 사람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해주는 것 같다. 어쨌든 요즘은, 개인의 가치가 가장 높게 평가되는 세상이니까. 호피폴라 역시, 돈 주고 살 수 없는 취향과 센스, 멋이 있는 ‘나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계획보다 두 달 앞서 계약을 하게 되었고, 빠르게 오픈을 준비하게 되었다. 5월 21일 계약을 하고, J와 둘이서 자축하며 망원동 자주 가는 식당에 들러 갈매기 살을 구워 먹고,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겨우 가계약을 했을 뿐이지만, 어쩐지, 안전선을 하나 정돈 넘어선 기분이 든다. 가족이며 친구들, 모두 나의 섣부른 시작을 우려하지만, 나는 여태 내가 살아온 대로 살아가려 한다. 잘 뻗은 길, 잘 닦여진 길이 아니더라도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길로, 불완전하지만 성큼성큼 용기 있게 나 자신을 믿으며 그렇게 나아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