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돈과 행복 그 어디쯤
‘작은 사무실에 길고 넓은 테이블을 놓고, 커피 머신을 들여놓아 커피 값을 아끼자.’ 에서부터 시작했다. 작은 사무실 만들기를 계획하다 결국 문화공간이라는 창대한 김칫국이 되어버린 호피폴라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비용도 예산보다 넘쳐 흐르고 있었다. 모아놓은 돈도 한 푼 없는 삼십 대. '넌 여태 뭐 하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냐,'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왔다.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정말로 이번만큼은 돈이 간절하다. J 가 사고 싶다는 의자를 보고 "예쁘다!"라는 말보다 "얼만데?"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나를 보며, 새삼 놀라고 있다. 멋진 인테리어를 보고 "이렇게 해볼까?" 가 아닌 "이건 돈이 많이 들겠지?"라는 생각이 앞서는 내가, 요즘. 조금. 한심하다. 왜, 여태, 뭐, 하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냐 넌... (네가 한 짓을 네가 알렸다!)
정말, 돈 욕심이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많아본 적 없어서 좋은지도 모른다) 포르쉐를 타면 좋겠지만(주행은 잘하는데 주차를 잘 못한다) 명품 가방을 척척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사러 가는 길마저 귀찮다) 정말로 그런 것들이 하나도 가지고 싶지가 않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살면서 돈이 없어서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했던 적이 거의 없다. 몇 번의 고비를 빼놓고. 그 몇 번의 고비는 늘 이사 때문이었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보증금이 부족할 때,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갔지만 거절을 당하고 돌아올 때,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에 우울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세상에서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 부스럭거리는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사회에서 제 몫을 못하는 패배자의 기분. 행복이 돈으로 만들어지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가끔 부족하지 않을만큼 가진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이 순간의 행복을 불안해하지 않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호피폴라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큰 목돈들이 필요했고, 가진 돈을 긁어 모아 겨우 얼마를 만들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평소라면 이 정도 금액이 통장에 찍혀있다는 것만으로도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을 텐데, 역시 행복의 척도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구나. 하지만 지금은 지난 날들처럼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진다거나 비참하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이런 과정 또한 추억이 될거라 생각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건 간에 이 또한 지나갈 테니까. 죽으란 법은 없다고 믿으니까.
중소기업 진흥재단에서 창업 자금을 대출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1357 문의전화를 걸어 대출 절차를 알아봤다.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자가진단, 상담, 대출 신청의 절차를 거쳤다. 자가진단을 마치고, 며칠이 지나 목동에 있는 중소기업 진흥재단으로 가 떨리는 마음으로 상담원 앞에 앉았다.
- 안녕하세요, 사장님 무슨 일로 대출을 받으시려 하나요?
아, 저는 지금 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데요, 학원 강사일도 병행하고 있거든요. 제가 공간을 좀 만들어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취미로 미술 하는 사람들 모아서 원 데이 클래스도 하고. 그래서 막 그림도 그리고, 디지털 드로잉도 하고,, 태블릿 아세요? 그런 걸로 막 그림도 그리고 .. 그럴 거예요..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만들면 디자이너 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정보도 줄 수 있고.. 그리고 사무실로도 쓰고..
- 네?? 그게 뭐죠?? 학원이에요?
아, 학원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공간이 있으면 학생들도 좀 소소하게 가르치고, 대형 학원은 아니고 약간 모임처럼... 그리고 디자인 일도 계속하고요, 시각 디자인인데, 업태를 교육도 하나 추가하려고 하는 거예요
- 그래서 그게 뭐예요? 디자인 회사에요?
아... (거의 눈물 날 뻔) 그게 ,,, 원 데이 클래스 모르시죠? 아 그러니까.. 그게...
- 무엇을 하실 건지부터 정하고 오셔야죠.
그게 아니라.. 다~정하긴 했는데, 사업 계획서도 있고, 운영계획까지 다 세우긴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뭘 말하는지 모르시는 거 같아서.. 자료를 준비를 못했어요.
- 직원이 5명 이상이에요?
네??? 아니요~~~ 저랑 친구 한 명이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 그럼 사장님, 여기로 오시면 안 되는데, 소상공인 시장 진흥 공단으로 가셔야 해요
네???? 그건 또 뭐죠??? 아.. 제가 너무 모르고 왔네요.
‘청년창업대출’... 정책 자금, 금리, 융자, 이런 단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까막눈이 돼버린다. 알아보니 중소기업 진흥재단은 고용자가 5명 이상인 규모의 중소기업을 지원해주는 곳 이란다. (그러니까 이름이 ‘중소기업’이겠지. 이 등신아) 그리고 노모드 디자인이 일반 과세자니까 중소기업인 줄 알았고. (죽으까?) 나는 소상공인이었다. 소상공인 진흥 공단은 대출 조건이 창업 후 6개월이 지나야 한다. 6개월 이상 매출이 있는 상태에서 그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해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노모드 디자인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노라 했다.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는 사무실의 잔금을 치르는 날이다. 치열하게 돈을 구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고 있다.(선입금 좀 해주세요 광고주님!)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리나 했더니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 그런데도 재미있는 사실은 전혀 힘들다거나, 지치거나, 괴롭거나, 비참하거나 뭐 그런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 평일 주말 밤낮을 치열하게 일하고, 현장이다 미팅이다 죽어라 뛰었는데 앞에서 반짝이는 사람은 따로 있던 회사생활과 다르게,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빛나게 하는 과정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겠지.
힘내자. 이 또한 지나간다.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