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매력적으로 살아가기
계약 후 나는 매일이 분주하다. 공간의 구역 배분부터 동선, 작은 빨대 하나까지도 골라야 하는 선택의 매일을 보내고 있다. 선택 장애가 심해 이런 사소한 결정들은 J에게 떠넘긴다.
- 이게 나아 보여? 아님 이게 나은 것 같아?
- 1번이요. 무조건
B형 여자인 J는 단박에 자신의 취향을 골라낸다. 혈액형 별 성격유형을 대체적으로 믿는 나는 우유부단한 이 성향을 피의 성질 탓으로 돌리곤 한다.(저는 A형입니다. 하지만 소.. 소심하지 않아요!) 요즘은 취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나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둘의 취향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외향적인 부분은 J의 의견을 90퍼센트 반영해주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인정하는 아주 감각적인 여자기 때문이다. 나머지 10퍼센트는 내가 결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10퍼센트에서 그 결정이 무너지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90퍼센트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묘하게 엮여있다. 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예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반대로 외적인 면보다는 내면에 관심이 더 많아 이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가치,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고 갈 호피폴라에 대한 감상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잘 꾸며놓은 공간 속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가는 것.' 뭐 그런 것들이면 좋겠다 하고.
힙힙힙. 요즘 힙하다는 말이 유행이라던데, 사람들은 자신을 힙하게 만들기 위해 음악, 영화, 미술을 찾아다닌다. 자신을 힙하다고 간접적으로 광고하며 취향의 우위를 가리기도 한다. 어떤 이가 대중가요를 듣는다고 해서 촌스럽다거나 음악을 모른다고, 멋이 없다며 비하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어떤 사람은 대중가요를 즐겨 듣다가도 길거리에서 알게 된 어떤 밴드의 음색이 좋아 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좋은 것은 그냥 좋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타인에게도 멋스러워 보이는 것이, 진짜 힙한 것 아닐까. 어쨌든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매력적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도 아름다운 일이 분명하다.
디자인을 업으로 삼아 10년을 했다. 미술 공부를, 디자인을 20년 넘게 했다. 아직도 나는 아티스트가 되지 못했고, 아트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나는 고흐의 그림도 좋지만 태오에게 쓴 편지의 첫 번째 문장에 감동한다.* 책과 글을 좋아한다지만 문학은 잘 모르겠고, 좋아하는 장르,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고집하기도 한다. 음악을 하는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지만 악보도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이다. 그래도 김광석의 목소리가, 이소라의 가사가, 유희열의 피아노가 나를 감동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정말 무엇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지만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음악이 매 순간 필요하고, 매일 아침 진한 커피를 마시길 좋아하는 나는...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호피폴라도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 유난스럽지 않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
* 책 [영혼의 편지]의 첫 문장은 '감탄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