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버티기의 기술
호피폴라가 문을 연지 3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특별한 일도 좌절할 만한 사건도 없이 3개월이 흘러갔다. 매출은 안정되었고 큰 손해 없이 카페는 돌아가고 있다. 요즘 나는 초심을 자주 떠올리려 한다. 호피폴라라는 공간을 갖기로 하면서 먹었던 마음, 다짐, 목적들에 대해서. 프리랜서를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서, '잘-하는 일로 돈 벌고,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즐기자'라고 생각했다. 잘하는 일로는 강의나, 디자인 기획 같은 것을, 좋아하는 일로는 카페, 글쓰기, 책 읽기 같은 것들이었다. 업으로 삼더라도 그것이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이 되어야 해야 한다고. 그래야 그것들을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들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페를 운영하다가 보니 자꾸 하던 일에서 멀어지고 있다. 디자인을 하는 순간보단 신선한 원두를 갈아 뜨거운 물줄기를 섬세하게 따라 붓는 것에 오히려 더 성취감을 갖게 되고,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자꾸만 살피게 된다. 카페도 누군가에겐 전문분야인데 취미 삼아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피에 대한 매너, 커피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매너, 그리고 이 호피폴라를 카페로써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매너.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매너를 지켜야 한다. 역시 잘하는 일보단 재미있는 일을 하는 편이 더 나와 잘 어울린다.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의 첫 번째 D&DPARTMENT 건물을 임대 계약 후 그가 다짐했던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는 500평이나 되는 건물을 임대하면서 크게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보자.라는 마음가짐, 그것 하나였다고 한다. '어쨌든 열심히 해보자'라고. 그는 직원이 8명이나 있었고 영상제작으로 이미 어느 정도 매출 안정을 이룬 후 시작한 카페 사업이었다. 출발부터 다른 내가 감히 그의 사업과 나를 비교할 순 없지만, 나는 생각한다. 나는 큰 규모의 카페, 사무실, 승승장구하는 브랜드를 원한 것이 아니라고.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먹고살 수 있는 정도의 적은 돈을 일정하게 벌고, 또 그 돈을 아끼고 아껴 쓰며 ‘나만의 브랜드’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호피폴라는 그동안 다양한 모임을 시도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취향 고백'이라는 모임은 어디서도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각자의 취향에 대해서 마음껏 수다 떨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는 영화를, 누구는 음악을, 누구는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가져와 이야기하고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면 공감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밖에도 독서모임인 '함께 읽어요', 음주 북 토크 '책과 와인', 드로잉 클래스 '피카소 드로잉', 미술 심리상담 맛보기 프로그램인 '그림으로 마음 읽기'도 여러 번 진행했다. 특히 '그림으로 마음 읽기' 모임은 예전에 미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따 놓은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그림으로 마음 이야기,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처음 만난 얼굴들도 금세 친해지는 마법을 보여주곤 했다. 덕분에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마음을 알아주고, 고통을 나누어주는 마음을 알아가고 있다. 날이 많이 쌀쌀해지는 데, 호피폴라에 들러주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많이 따뜻하다.
다양한 모임을 하고, 커피 메뉴들도 안정이 되어 공간은 많이 안정되었다. 반대로 부자가 될 마음이 없다고 너무 떠들어댄 탓인지, 나는 여전히 매달 월세를 걱정하고 카드값 인출 날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매달 돌아오는 사이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 큰 손해는 없지만 이렇다 할 이득도 없는 이 카페는 어떻게 하면 브랜드가 될까? 하늘이 너무 예쁜 가을에, 나는 자꾸 땅만 보며 걷는다.
'좌절금지. 비관 금지. 막연한 희망 금지. 현실적 비난 금지. 무책임한 낙관 금지. 비관론적 시선 금지. 씩씩하게 버텨라 도연아. 존버 하자.'
청춘이라는 건 어떤 때부터라도, 아무리 늦은 나이일지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청춘은 스스로 무리를 해서 힘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괴로움만 잔뜩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 괴로움 속에 기꺼이 몸을 들여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