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워라벨은 안전한가요?

우아한 폐업

by 도연
당신의 워라벨은 안전한가요?


2018년 3월에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1년이 지났다. 노모드디자인과 호피폴라는 자리를 잡았다면 잡았고, 아직 멀었다고 한다면 멀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적인 매출을 기준으로 한다면 매출이 나쁘지 않으니 자리를 잡은 것 같지만, 이 매출이 다음 달에도 유지되는가? 앞으로의 3달이 예상 가능한 매출인가? 그렇다면 또 그건 아니다. 그러니까 아직 멀었네, 쪽에 가깝기도 하다.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를 하면서 비정규직 또는 프리랜서로의 삶을 4년 정도 유지해왔다.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부유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 불규칙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규칙이 보이고 불안정한 생활 속에 안정이 찾아지더라. 회사를 그만두면 굶어 죽는 줄 알지만, 굶어 죽지 않더란 말이다.


예전의 나, 직장인이던 시절에는 일이 곧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일은 나를 나타내고 표출하는 수단이며 명함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얼마나 트렌드 한 사람인가를 일로써 과시하고 싶어 했었다. 주말에도 일을 했고 휴일은 당연지사 없었다. 그러다 점점 일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했고, 휴일에는 일이 아닌 다른 곳에 시간을 쏟기 시작하면서 점점 회사 밖에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일은 일일 뿐.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받고 싶어 했지만, 되돌아보면 기억 속에는 내가 아닌, 일만 남았고 그때 어울렸던 사람들도 나에게서 일이 없어지니 모두 떠났거나 사라졌다. 그 후, 몇 년을 나를 찾고자 전혀 다른 곳에서의 삶을 선택했고 산으로 강으로 배낭을 메고 그렇게나 많이 여행을 다녔었다. 이제야 나는 일을 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고, 또한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연스레 일마저 소중해졌다.


카페를 운영한 지 1년이 가까워져 온다. 최근에는 너무 많은 일을 했더니 지쳐서 다 그만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모드 디자인 일도 너무 벅차고, 강의를 하는 것도 지치고, 카페를 꼬박꼬박 챙기고 운영하는 것마저 힘에 부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겨났다는 무거운 이유들로 나 자신을 너무 괴롭히고 있지는 않는지 보는 눈이, 스스로 기대했던 미래를 무너트리는 것이 두려워서 감당하지 못할 일들과 스트레스를 자꾸만 생산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계획들이, 나의 사업이라 불리는 이 벌려놓은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연재를 시작한 이 "창업일기"도 일 년이 채 안돼 '힘들어서 관두려고요.' 하면서 맥 빠지게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늘 이렇게 일이 내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한다. 이럴 때일수록 나만의 소소한 행복과 무너지지 않는 일상의 루틴이 필요하다. 하루키의 문장을 빌린다.


<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



지금은 어쩌면 워라벨에서 Life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삶 속에 일이 속하도록 구조를 바뀌었다. 디자인도, 호피 폴라도, 강의도, 글도 그림도... “나”라는 주체 속에 있도록. 어쩌면 지난 시간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며 살았던 것처럼, 지금도 무리하게 균형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정답인지 그 균형이란 것은 누가 정하는지, 그것 또한 결국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해답은 있다. 밸런스를 50:50으로 맞추는 것만이 좋은 밸런스는 아닐 것이다. 좋은 밸런스에는 이쪽으로 기울어질 때도 저쪽으로 기울어질 때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중심축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균형감,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앞으로 언젠가의 나는 노모드 디자인도 호피 폴라도 운영하고 있지 않을 지라도 나를 잃어버릴 걱정은 없다. 중심에 아주 단단한 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브랜드다.


[Good balance]는 밸런스를 맞춰주는 중심축이 단단해야지만 균형을 잡고 무너지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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