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성실한 예술가 되기
"그림을 잘 그리려면 어떻게해야하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드로잉 강사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리기 기술을 10년 넘게 배우고 학습해 몸에 베인 대로 그리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색을 만들어 그리는 예술가가 되고싶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대하고 그렷으면 좋겠고.
내가 생각하는 잘 그리는 그림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자면 그림을 그릴때 관절 위치와 근육을 잘 표현하는 그림보단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론이 학습된 상태에서 손이 가는대로 그려지면 더할 나위없겠다. 드로잉 강의를 할 때, 이론을 가르치면서도 절대로 이대로 그려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기본을 알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는 것도 좋고, 기본도 모르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는 것도 좋다. 그림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으니까.
글도 다르지 않다. 전문적으로 문자나 문장에 대해서 배운적은 없지만 그저 읽는 것이 좋아 많이 읽고 그러다가 보니 쓰게 되었다. 자주 쓰다보니 길게 쓰고 한 권쯤 묶어낼만큼의 양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누가 나의 글을 보면 엉터리라고 할 수도 있다. 비문도 많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안되는 건 기본이요, 오탈자도 수두룩해 이번에도 책을 엮으면서 교정을 보느라 애를 먹었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쓴다. 주제를 잡기위한 기획은 있었지만 이렇게 써야지 저렇게 써야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써지는 대로 써버렸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어설픈 글을 보고 좋다고 한다. 글을 전문으로 배우신 분도 글을 써내는 솔직한 방식이 부러울 정도로 좋다는 칭찬도 해주셨다. (물론 오탈자나 비문만 잘 고치시면 정말 좋겠다라고 했다. 역시 어설픔은 감춰지지 않았겠지) 글을 쓰는 것을 제대로 배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써내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기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써내는 것이 중요한 것. 그래서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 써내면 더할 나위없지만 기본이 없더라도 자신의 느낌을 표현해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종목이 글이나 그림 같은 것이겠지. 흔히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 예술이란 것이 주관적이어서 누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누군가에겐 좋은 평가를 받게 한다. 그래서 나는 또 생각해봤다. 그러면, 작가, 화가, 혹은 글쟁이 그림쟁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잘쓰는 것?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할까? 나는 잘 쓰는 것과 잘 그리는 것보다 성실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무라카미하루키의 생활방식에서 자기반성을 했다. (하루키는 매일 달리고, 매일 일정시간 글을 쓴다.)
예술가라면 어떤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짜릿한 영감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만큼의 퇴폐적 즉흥성을 동반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그래서 앞뒤 안가리고 열심히 퇴폐적으로 놀았는데...) 요즘 예술가들이 말하는 자신의 성공방식은 유독 ‘성실함’이었다. 어떤 유명작곡가는 티브이에서 이런 말을 했다.
-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작업해요. 새벽까지 작업하는것이 어릴적엔 그래야만 좋은 곡이 나오는 것 같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밤이 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작업이 길어지고 밤을 새게 되지만, 아침에 작업을 하면 집중이 잘되서 작업의 질도 좋고 속도도 빨라지더라고요. 뇌가 깨어있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제가 작업하는 방식입니다. (대략 이런식의 말을 한 것 같다.)
아무튼 좋은 글과 그림 같은 것들은 영감은 찰나이고 그 찰나를 성실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완성되는게 아닐까라고. 아무리 좋은 재능도 표현하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다. '내일 아침에 써야지' 했던 이야기는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리고, 또 다음날로 미루기 일쑤니까. 아무튼 예술도 결국은 성실함이 꼭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새벽같이 6시에 일어나 저녁 일찍 잠들어야한다는 바른생활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정한 규칙을 잘 이행하고 성실히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의 덕목인 건 확실한 것 같다. (닥치고 그려라.같은 늬앙스다. 비슷한 늬앙스로 몇가지 더 예를 들자면 그림그리는 법을 배울 시간에 그냥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제대로 쓰고 싶으면 우선 쓰자는 거다. 그것도 아주 꾸준히. 뭐라도 나올때까지 성실하게.)
그러니까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