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폐업
디자인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 디자인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고.
내가 50살이 되어도, 60살이 되어도 남의 일을 하고 포스터를 뽑고, 로고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고.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멋있게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렇게 실무에 회의적이면서 무슨 디자인 회사까지 차렸냐고? 디자인 사업자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마지막 디자이너로써의 미련을 불태우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물론 상업 디자인을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노래 부르듯 말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할 줄 아는 게 디자인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방구석 프리랜서 말고, 사무실을 만들어 규칙적으로 일하는 제대로 된 프리랜서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미련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해볼 만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수개월 동안은 일이 순조로웠다. 대기업이나 기획사에서 작업 의뢰들이 꾸준히 들어왔고, 프리랜서 시절부터 같이 일해왔던 클라이언트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고 꾸준히 프리랜서로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클라이언트 쪽에서 개인사업자를 원했기 때문에 사업자를 내게 되면서 노모드 디자인을 만들게 되었다. 혼자 작업하던 때보다는 일의 규모도 커졌고 견적도 높아지면서 왠지 잘 풀릴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좋은 예감도 잠깐, 소위 말해 갑질이 시달렸다. 오후 7시에 자료를 보내고 다음날 오전에 포스터 시안 5개를 보내달라거나, 제안한 시안에 대한 피드백 없이 계속 새로운 시안을 더 보여달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고, 점점 밤낮없이 담당자의 요구에 질질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일도 할 수 없었고, 이대로라면 정말 병에 걸릴 것 같았다. 초기에 잡았던 콘셉트는 온데간데없고 투자사들,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다 합쳐놓은 짬뽕, 아니 짬짜면이 되어 갔다. 의욕이 떨어지고 자존감마저 추락했다. 갑질이 심한 클라이언트와는 계약해지를 했고, 심지어 어떤 곳은 회사가 망했다. 일거리가 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 하, 정말 디자인하기 싫다.
내가 디자인이 하기 싫은 건 디자인 그 자체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써 존중받지 못하는 구조 탓이 크다. 내가 잘 나야, 아티스트가 되어야 스타일을 반영하면서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을 10년간 "슈퍼 을"로 살아오며 많이 느꼈지만 그 구조는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좀... 멀리 와버린 느낌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 뭐 그런 느낌이랄까) 비주얼이 이렇게나 중요한 시대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디자인의 가치는 떨어져만 가고 있다.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시간, 사람의 감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뛰어나게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아니란 건 인정하지만, 디자인에 애정이 없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서 돈벌이 목적이 아닌, '그저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만족할 수 있는 퀄리티의 작업을 다양한 사람들과 폭넓은 분야에서 끊임없이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정말이지, 되고 싶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가.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시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잡는 것도 창조다.
우리 D&DEPARTMENT도 '롱 라이프'나 변하지 않는 디자인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은 확실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 우리는 '유행하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행에 어울리는 롱 라이프'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롱 라이프는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시대'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카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